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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Apr 28. 2020

집에 초대한다는 것

초대의 의미

"할머니, 개 이름이 뭐예요?"

"이름? 그런 거 없어. 그냥 개야."

"우리가 지어줄까요?"

"그려 그럼, 한번 지어봐."

"멍구 어때요?"

"뭐라고?"

"멍구요. 멍구!!! 개가 멍 때리는 거 좋아하는 거 같아서요. 사실 우리는 이미 그렇게 부르고 있어요."

그렇게 뒷집 백구는 멍구가 되었다. 우리가 개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개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우리에게로 와서 멍구가 되었다. (feat. 김수영 '꽃')


빨간지붕은 할머니 집, 파란 지붕은 멍구네 집


겨우내 뵙지 못해 안부가 궁금하던 차에 빨간 지붕 집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도 오랜만이라며 반가워하셨다. 언제 이사오냐고,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그동안 많이 적적하셨나 보다.


"저희 집에서 할머니 집이 보이는데, 할머니 집이 예뻐서 좋아요."

"예쁘긴 뭐가 예뻐...새 집이 이쁘지."

"아니에요. 예뻐요. 빨간 지붕도 마음에 들고, 볕 잘 드는 마당도 마음에 들고, 요 나무도 마음에 들어요. 이 나무는 무슨 나무예요?"

"몰라. 그냥 꽃나무여..."


잠깐 집에 들어오라고 하신다. 우리(나+딸+딸 친구)는 동시에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할머니가 강하게 청하셔서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세상에, 얼마나 쓸고 닦으셨는지 집이 먼지 한 톨 없이 반짝반짝 빛이 난다. 주방에 데리고 가서 쑥전을 먹어보라고 채반째로 내미셨다. 한 입 베어 무니 쑥향이 짙게 배어 나왔다. 아들 주려고 직접 쑥을 캐서 부친거라고 하셨다. 평소에 쑥전을 먹지도 않던 딸이 쑥전을 하나 집어먹더니 '엄마가 해준 것보다 맛있어요' 라며 너스레를 떤다. 그럴 리가 있겠어, 못 믿는 하는 할머니한테 자긴 거짓말 못한다면서ㅎㅎㅎㅠㅠ


할머니는 한참동안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으셨다. 혼자 계셔서 적적하신 것 같다고 주중에는 아드님과 함께 지내신다고 한다. 아드님 집은 남양주지만, 직장이 여기서 가까워서 주중에는 할머니 집에서 출퇴근하고, 주말에만 남양주 집으로 가신다고 했다.


다시 찾아 뵙겠다고 인사하고 나오는데 이번에는 건너편 집에서 우리를 초대했다. 같은 교회를 다니는 세 집이 7년 전 같이 땅을 사고 함께 집을 지었다고 하셨다. 마당에 있는 티테이블로 차와 쿠키를 내어주셨다. 우리 세 집이 만나고 집을 짓게 된 과정, 그쪽 세 집이 만나고 집을 짓게 된 과정이 오고 갔다. 재미있는 건 세 집 모두 아들만 둘씩이라고 한다. 아이들이 모두 대학생이 되어 나가고 두 내외분들만 사시는데, 동네에 아이들의 노는 소리가 들려서 좋다고 하셨다. 7년 전 처음 이 동네에 왔을 때는 반딧불이가 보일 정도로 청정지역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들어 식당, 카페에 들어서면서 예전처럼 조용하지만은 않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우리가 집을 짓는 1년 사이 우리 집 위쪽으로 새로운 카페가 들어섰을 정도니, 그 분들 눈에는 이곳의 변화가 상전벽해의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집 구경도 시켜주셨다. 집 구경은 집을 짓기 전후가 매우매우 다르다. 그 전에는 인테리어 정도만 보았다면, 지금은 집의 향이 어떤지, 평면 구조가 어떤지, 소재가 무엇인지, 마감을 어떻게 했는지 등등 전 과정이 궁금해진다. 긴 시간은 아니어서 나는 거실과 주방 원룸 통합형이라는 것과 집의 전체적인 분위기(클래식하다, 모던하다) 정도만 보았는데, 그 짧은 시간에 남편은 욕실의 타일을 어떻게 붙였는지, 세면대가 뭔지, 주방에 돌출 창문이 있는 것까지 디테일하게 보고 나왔다. 같은 것을 보더라도 같은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서로 다른 것을 보는 우리, 그래서 같이 살면서 보완하는 건가 보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어찌보면 피아를 구분하고 경계를 세우는 일이다. 누군가를 집에 초대하고 집을 보여준다는 것은 경계를 낮추고, 나를 드러내며 잠시나마 타인에게 자리를 내주는 행위로 향후 관계를 진전시켜나가겠다는 의사표현이기도 하다. 앞으로 자주 마주치게 될 이웃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갑자기 집에도 들어가보면서 앞으로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살게 될지 궁금해졌다. 경계 안에 머무를 것인가? 경계 밖으로 걸어 나가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될까? 모르겠다. 지금까지 살았던 동네와 친구들에 대한 애착이 큰 상태여서 새로운 이웃에 대한 욕구가 크지 않은 상태지만, 이런 동네에 산다는 것은 이웃과의 관계(충돌과 갈등 포함)는 불가피하다. 살아봐야 알겠다. 아니 살아봐도 모를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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