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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Nov 09. 2020

가족이란 무엇인가

조금은 변한 우리 사이

얼마 전 번개처럼 나간 해맞이에 자기를 깨우지 않고 우리끼리 조용히 다녀왔다고 딸아이가 단단히 삐쳤다. 자기도 엄연한 이 가족 구성원인데, 맨날 둘만 이야기하고, 둘이서만 해돋이 보러 간다면서 눈물까지 그렁그렁해서 속상하다고 했다.


요즘 둘이 사이좋은가 봐! 딸이 자기만 쏙 빼놓고 둘이 해돋이 보러간 이야기를 동네방네 떠들고 다녀서 그런 소릴 들었다. 누가 들으면 둘만의 데이트라도 즐기기 위해서 아이가 자는 사이 나갔다 온 걸로 오해할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다. 곤히 단잠을 자고 있는 아이를 깨우기가 뭣해서, 깨우고 설명하고 하다보면 해 뜨는 시간 놓칠까봐 일어나 있는 사람들끼리 쓱 나갔다 온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게으른 배려가 오해와 소외를 낳았다면 풀어야 했다. 해결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시끄러울 민원이었다. 날을 잡았다.


오늘의 해(photo by 딸)


역시 스스로 하겠다고 한 일엔 군말이 없다. 우리가 일어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딸아이도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나서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입동의 아침이어서 그런지 날은 추웠고, 밖을 내다보니 서리도 내려 있었다. 고작 5분도 안 걸리는 뒷동산이지만 지리산이라도 가는 것처럼 스키 바지로 중무장을 하고 뒷동산으로 향했다.



아직 해뜨기 전이다. 동네 전체가 잠들어 있는 것처럼 고요한 시간이다. 하늘과 산이 만나는 곳에서 주홍빛이 흘러나온다. 며칠 사이에 해가 떠오르는 시간도, 위치도 살짝 옮겨갔다. 오늘 해가 뜨는 시간은 7시 15분, 방향은 골프장 쪽이다. 주변이 점차 발그랗게 달아오르고, 주홍빛은 번져나가고, 그 가운데서 황금빛 해가 천천히 떠오른다. 오늘 우리가 날 잡은 걸 알았나 오늘따라 해가 더 또렷하고, 더 커진 것처럼 보였다. 딸아이는 아빠의 팔에 매달려 재잘거리다가 연인처럼 다정하게 팔짱을 껴고 해돋이를 지켜보았다.   



오늘은 해보다는 남편과 딸의 뒷모습에 더 눈길이 간다. '우리 딸 많이 컸네', 라는 생각과 '가족이란 이런 건가', 하는 생각이 차례로 지나갔다. 나는 가족주의, 혈연주의에 대한 강박이 없는 편이다. 스위트홈 판타지도 없다. 화목해서 나쁠 게 없지만, 가족의 화목을 위해서 가족집단주의를 강요할 생각이 없다. 함께 해서 즐거울 때가 많지만, 가족이라서 꼭 함께 해야 한다는 억압이 싫다. 어쩌다 우리는 가족이 되었고, 어쩌다 집도 지었고, 다행히 우리의 삶은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집은 우리 각자의 삶을 위한 공동의 베이스캠프일 뿐이지 공동의 목적지가 아니다. 오늘처럼 뜻이 맞을 땐 같이 떠나기도 하고, 공동의 필요와 욕구에 관해서는 연대하고 협력하며, 취향이 만날 땐 느슨한 취향 공동체가 될 뿐이다.


집을 지으면서 서로 만나는 지점이 늘긴 늘었다. 오늘처럼 해맞이를 같이 하기도 하고, 매일 저녁에는 여름이와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하고 온다. 우린 가족이니까 꼭 같이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만나고 좋아서 계속 그러고 있을 뿐이다. 설계 초기에 딸이 우리 가족을 설명할 때 '우리는 모두 다른 곳을 보고 있다'라고 했는데, 지금은 뭐라고 하려나? 오늘처럼 '우리는 가끔 같은 곳을 바라본다'고 하려나?  가족은 저마다 다른 모습일테고, 우리의 가족의 모습도 계속 변할 것이다.  



https://brunch.co.kr/brunchbook/ohmy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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