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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Nov 10. 2020

쓸쓸함 한 조각 먹고 가실게요.

감나무가 말하길

넘 뻔해서 그러지 않으려고 기를 써 보지만 나로서도 별 수 없다. 이 계절엔, 이 장면을 보고서는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교과서에 실리면서 강요받았던 휴머니즘, 진한 감동, 희망의 압박에서 자유로워진지는 오래되었고, 오 헨리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 계절엔 쓸쓸함 한 조각 먹고 가실게요."



어느 날 가을비와 서리에 감나무 잎이 우수수하고 떨어진 것을 발견했을때 내 가슴 한 가운데가 뻥 뚫린 것처럼 나의 어떤 부분이 떨어져간 느낌이었다. 출산 후 처음으로 머리를 감았을 때 수채 구멍이 막힐 정도로 한움큼 빠져버렸던 머리카락을 보는 것처럼, 한참은 허탈하고 쓸쓸했다.



집 지으면서 법정 조경수로 심었던 나무 중에 가장 힘차고 씩씩하게 잘 자랐던 감나무였기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감나무를 매일 바라보면서 알게 모르게 많이 의지했었던 것도 같고. 이제 마지막 잎새와 앙상한 나뭇가지만이 남아 다시 속삭인다. 잎사귀 무성하고 감이 주렁주렁 복스럽게 달려있는 모습만 감나무가 아니고 이렇게 앙상한 나뭇가지와 마지막 잎새만이 매달린 시시한 모습도 감나무라고. 맞다. 이것도 감나무다. 이렇게 새 집에서 여름, 가을을 지났고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그 시간 동안 집 짓는 일의 고단함, 그래도 잘 끝났다는 안도, 자연이 주는 풍요, 생활의 안정과 편안함, 그리고 오늘은 쓸쓸함까지 골고루 맛 보고 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ohmy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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