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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Nov 19. 2020

재미있는 맛집

순환하는 집의 색다른 용도

지난주에 딸의 (여자) 친구들이, 어제는 딸의 (남자) 친구들이 집에 우르르 놀러 왔다. 남녀의 노는 방식이 확연히 다른 가운데(차이점은 다음 기회에..) 공통적으로 하는 놀이가 있었으니 바로~~~!!! 술래잡기(정확히는 숨바꼭질+술래잡기로 숨어있다가 들키면 도망가고 잡는 놀이)다.


지금의 열두 살은 어떤 나이인가? 사춘기 진입 직전의 나이(딸은 스스로 사춘기라고 말하고 있음)로 최대한 감시자의 눈을 피해 방문 꼭 닫고 밀실로 들어가 게임이나 유튜브에 빠지는 나이인줄만 알았다. 아니었다. 일찍이 졸업한 줄만 알았던 동서고금 매우 고전적인 놀이인 술래잡기를 하고 있으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심지어 밥 먹을 땐 미국 대선에 대해서 토론하더니(잘못된 정보도 꽤 많았지만, 역시 오늘 주제 아니기에 패쑤), 밥 먹고 나서는 헬렐레하는 모습으로 술래잡기를 하는 걸 보고 있노라니 인지부조화가 일어날 정도였다. 얼마나 과열됐던지 여자아이들은 술래잡기하다가 옷을 다 벗어던질 지경이었고, 남자아이들은 딸이 있어 옷을 벗지는 못하고 땀을 식히려고 창문을 죄다 열어젖혀서 이 구역 모기들이 우리 집으로 집결하는 바람에 우리 세 식구가 잠을 설치는 불상사가 벌어지고 말았다. 우리야 모기야 뜯기건 말건 역시 아이들은 노는 존재, 놀 땐 눈에 뵈는 게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계단 앞쪽으로 거실-현관, 계단 뒤쪽으로 주방-다용도실-현관으로 연결되어 순환하는 구조


그렇게 한바탕 놀고 간 아이들이 우리 집에 또 놀러 오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왔다. 이유는 하나 우리 집이 술(래)잡(기)하기 좋아서라고 했다. 언뜻 들으면 집이 크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리 집 1층 바닥면적은 20평, 2층은 18평, 총 38평으로 작지는 않지만 크다고 할 수는 없다. 딸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우리 집이 빙글빙글 돌 수 있어서라고 했다. 우리 집 1, 2층 모두는 계단을 중심으로 완벽히 순환한다. 모든 지점에서 왼쪽,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양방향성을 가진다. 막다른 곳이 없이 사방이 뚫려있는 연결성이 지속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가속도를 만들어내다가, 양방향성은 극적인 전환을 연출한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돌다 보면 꼬리가 잡히기도 하고, 누군가 갑자기 역방향으로 돌면 혼돈이 일어나고, 어딘가 숨었다가 중간에 툭 튀어나오면 아이들은 혼비백산한다. 빙글빙글 돌다가 애들이 정말 돌아버린 것도 같았다. 이과적(?)으로 질량만 가진 스칼라의 존재가 방향을 가진 벡터의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설계 : 코비즈건축협동조합]


순환 구조의 집에서 생활한 지 어언 6개월, 현재까지 결산해보면 매우 편리하고 효율적이다. 저녁부터 집에 도착해서 1층 현관으로 들어오면 두 갈래 길이 펼쳐진다. 하나는 거실로 직행, 또 하나는 다용도실로 직행, 장을 봐 왔다면 다용도실로 가서 바로 짐을 정리하고, 주방에서 음식을 해서 밥을 먹고, TV를 보다가 2층으로 올라간다. 드레스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바로 옆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침실로 이동해서 잠을 청한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반대의 동선으로 움직인다. 이렇게 일련의 활동들이 서로 연결되고, 하나의 서클을 만드는 것이 생활의 편리함뿐만 아니라 놀이의 재미까지 극대화시킨다고 하니, 결국 생활도 놀이도 순환과 흐름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우리 집은 술래잡기 맛집이 되었다. 한동안 우리 집은 아이들의 술래잡기로 떠들썩할 것 같다. 코로나 19로 어디 나가노는 것도 조심스러운데 집에서라도 땀 뻘뻘 흘리며 술래잡기라도 한다니 고마워하며, 뿌듯해하며 얼마든지 집을 내주어야 할 것 같다. 커튼 뒤에 숨어 있다 뛰어나오다 커튼 봉 떨어지고, 옷방을 벌집 쑤시듯 뒤집어놓고, 가만 잘 서 있던 액자는 죄다 나자빠지고, 소파는 서서히 내려앉는 중이지만 재미난 집 지은 업보로 생각하는 수밖에. 이런 재미까지 의도하신 것은 아닐 테지만(설마 의도하심?) 우리  집을 설계하신 건축가님이 아이들의 새로운 용도를 알게 되신다면 매우 매우 기뻐하실 것이다.


https://brunch.co.kr/brunchbook/ohmy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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