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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Nov 24. 2020

물들어

서쪽으로 기울다

집을 지으면서 나란 사람도 참 많이 변했다. 어쩌면 집 짓기의 최대의 성과는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사실을 뼛속까지 깨달은 것이 아닐까 싶다. 여러 가지 문제가 여러 가지 형태로 뼈를 때렸고, 절대적으로 신봉하던 것들이 수시로 무너지고 부서졌다. 때때로 처절했다. 앗,,오늘 하려는 얘기는 처절한 것은 아니고(처절한 것은 다음 기회에...), 아주 귀여운 수준의 것이다.



집을 짓기 전까지(불과 1년 전만 해도) 나는 남향집 맹신론자였다. 하루 종일 밝고, 쨍하고, 풍성하게 들어오는 빛을 사랑했다. 친정 집이 남향집이었지만, 그땐 집에 있는 시간도 많지 않았고, 집에 있는다해도 빛 따위에는 큰 관심이 없어서 몰랐다. 남향집의 장점을 알게 된 것은 육아휴직하고 전업으로 육아를 할 때였는데 하루종일 정남향 집에서 지나면서 남향집의 장점을 온몸으로 흡수했다.



남향집의 장점은 겨울에 극대화된다. 아침부터 해가 깊숙이 들어온다. 아침에 들어오는 빛은 찬란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거실 커튼을 열어젖혔을 때 쫙(커튼 봉 스타일 말고 커튼레일에서 나는 호쾌한 소리) 하는 효과음과 함께 온몸에 와락 쏟아지는 빛을 받고 있노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오늘 하루가 새로울 것만 같고, 하루 종일 기분 좋을 것만 같고, 모든 것이 잘 될 것만 같은 희망적인 에너지가 솟구쳐 좀 과장하면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런 에너지는 사람을 가만 두지 않는다. 뭔가 빨리 시작하도록 추동한다. 주로 나는 빨래를 돌린다. 저 햇빛에 내 옷을 보송보송하게 말리고 깨끗하게 소독하겠어, 부지런을 떨었다.



그래서 집을 지으면 무조건 남향집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땅 모양 때문에 그토록 맹신하던 정남향 집을 지을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남동향인 집이 되었다. 한동안 낙담했는데, 그래도 (동)남향이라고, '남'에 살짝 걸치고 있는 것에 위안을 삼았다. 그런데 막상 이사 와서 살아보니 '남'도 아니요, '동'도 아닌 '서'에 몸이 기울고 마음이 따라가고 있다.



때는 바야흐로 가을의 끝자락, 겨울의 시작이랄 수 있는 지금 서쪽에서 들어오는 빛은 여러 가지 오묘한 감정을 안겨준다. 일단 쓸쓸하다. 시절의 분위기가 더해져서 그렇기도 할 것이다. 쓸쓸하게 나지막하게 스며드는 빛은 뭘 재촉하는 법이 없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기에, 곧 넘어갈 것이기에 뭘 시작하기보다는 하던 것을 멈추게 한다. 그렇게 서쪽 하늘로 뉘엿뉘엿 넘어가면서 집 안으로 스며든 빛은 사람을 느긋하고 여유 있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서향 빛은 존재감을 과시하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기웃거린다. 센터 욕심도 없고 오히려 구석구석을 살피는 쪽이다. 그래서 집 안에서 이동하다가, 코너를 돌다가 문득 발견하게 된다. 헉, 언제 여기까지 들어오셨나.



계절과 날씨와 시간에 따라 빛의 색과 형태, 밝기가 시시각각 바뀌어 움직인다. 때로는 출처도 모르겠어서 어리둥절해지는 오묘한 빛도 마주친다. 우리 집에 가로로 긴 창, 세로로 긴 창 등 다양한 모양의 창이 많아서인지 기이한 빛의 무늬도 가끔 출현한다. 오늘 오후에 발견한 이 빛의 무늬 좀 보시라. 당최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미확인이다. 넌 대체 누구냣!



겨울의 서향 빛은 따뜻하다. 그 따뜻함은 온도에서만 오는 게 아니라 색감에서도 온다. 톤다운된 주홍빛은 사람을 캄다운시킨다.



누군가에게 서향 빛 칭찬을 늘어놓으면 분명 그러겠지. 나이 들어서 그런 거라고. 그럴 수도 있고, 뭐 부정하진 않겠다. 이유야 어떻든 중요한 것은 나는 서쪽에 한참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이고, 오늘도 나는 서향 빛에 물들어가고 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ohmy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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