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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Nov 30. 2020

김칫독을 묻으면서

미쿡 할머니를 생각하며 1

한 15년 전 미국에 있을 때 미쿡 사람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할아버지는 GE를, 할머니는 지역 전화국에서 일하다 은퇴한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으로 두 분 모두 매우 friendly 하고, 집도 lovely 하고, 미쿡 음식도 tasty 하고 다 좋았는데, 단 하나의 문제는 방세를 안 받겠다고 하셨다. 공짜를 좋아하는 나지만, 이유가 아주 흔쾌하지는 않았다. 가난한 나라에서 이 먼 나라까지 공부하러 왔는데 어떻게 방세를 받겠냐면서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것이다. 아,,가난한 나라요? 내가 막 애국심이 넘치는 그런 사람 아니고, 삼성이나 올림픽 들먹이면서 우리나라가 선진국 반열에 오르지 않았냐며 우길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가난한 나라 취급은 좀 그랬다. 우리가 제일 잘 나간다고 생각하는 미국인 특유의 우월감 살짝, 독실한 기독교인의 준비된 자선 의식 뿜뿜은 너무 얄밉지 않은 수준이었지만, 내가 그 대상이 된다는 그 기분이 묘했다. 그래도 노부부의 호의를 더 이상 거절할 수도 없었고, 실상은 충분한 돈을 들고 간 것은 아니어서 못 이긴 척 그러기로 했다. 그래도 공짜로 신세지기는 싫어서 매달 방세 대신 할머니가 좋아하는 초콜릿과 와인,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도넛과 맥주 등등을 사다 날랐다.


한 번은 집에서 전화가 왔는데, 할머니가 깜짝 놀라며 물어보셨다. 너희 집에 전화기가 있냐고. 네???!!! 아주 잘 사는 편은 아니었어도, 태어났을 때부터 우리 집에 전화기가 있었는데요. 아, 컬러 TV도 있었다고요. 전화기가 있냐고 묻는 미쿡 할머니가 생각하는 한국은 도대체 어떤 나라이며, 그 출처가 구체적으로 궁금해서 빈곤한 영어 실력으로 탐문한 결과, 출처가 M.A.S.H라는 드라마라는 걸 알게 됐다.


MASH(Mobile Army Surgical Hospital)의 배경은 무려 한국전쟁이다. 당시 미군 이동외과병원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다루는 코미디 드라마였는데, 당시 시청률이 40%에 육박할 정도로 미국 전역을 휩쓸었던 나름 전설적인 드라마다. 그 드라마에서 한국은 상당히 왜곡되거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그 영향으로 상당수의(특히 내륙 주, 더 정확히 내가 있던 곳은 소위 러스트 벨트애 속하는 미시간주) 미국인에게 한국은 그 드라마 속의 한국의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재미있기도 했고, 서럽기도 했다. 내가 있던 2005년에도 재방송을 하고 있었다. 어느날 저녁에 같이 앉아서 그 드라마를 보는데 한국 사람들이 땅에 뭔가 묻는 것을 미군들이 보고 폭탄을 파묻는 줄 알고 난리가 났는데, 그 뭔가가 바로 김칫독이었다. 그 장면을 보던 할머니가 미간을 찡그리며 '너희 나라애선 아직도 저렇게 음식을 땅에 묻냐'며 나를 석기시대 사람 보듯 바라보았다. 어린(?) 마음에 기분이 잔뜩 상해서 저 배경은 전쟁 직후고 지금 50년이 지났고, 지금은 아파트가 많아지면서 김칫독은 거의 사라지고 김치냉장고로 대체되었으며, 우리 집엔 가장 크고 좋은 김치냉장고가 있다며, 무슨 초등학생처럼 난생처음으로 가전제품 자랑을 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나중에 한국에 가서 성공(?)하면 할머니, 할아버지를 서울, 코리아로 초대해서 완전히 달라진 우리의 모습을 보란 듯이 보여주겠다는 포부도 있었지만, 이제껏 그 분들을 초대할 만큼 성공(!) 하지 못해서 초대하지 못했고, 애 낳고 살기 바빠서 연락도 끊긴 채 세월만 이리 흘러버렸다. 벌써 15년도 넘은 (케케묵은) 이야기를 왜 하냐, 바로 미쿡 사람들을 놀래키고 멸시받았던 그 문재적 김칫독을 묻었단 말씀!


우리 집, 남편 집 양가에서 모두 김장 김치를 넉넉하게 보내주셨고, 집도 지었겠다, 엄마가 물려준 항아리가 팽팽히 놀고 있겠다, 땅을 파고 싶어 안달 난 남편이 재미 삼아 김칫독을 묻어보기로 했다. 미쿡 할머니한테 자랑했던 김치냉장고를 뒤로 하고, 그 우스꽝스러워하는 김칫독을 묻고 얼마나 뿌듯하고 든든하고 기대되던지. 아침에 일어나서 김칫독 잘 있나, 괜히 한번 더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살아 계신다면 100살이 가까이 되셨을 그 미쿡 할머니가 생각난다.




https://brunch.co.kr/brunchbook/ohmy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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