뿐이고
이 동네로 이사 오고 나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동네를 산책하면서 어느 날 빈집 울타리에서 무지막지하게 가시 돋친 탱자나무가 내 눈에 띄었을 뿐이고, 그 아래에 크고 작은 탱자들이 떨어져 그야말로 탱자 탱자 놀고 있었을 뿐이고, 땡그란게 너무 예뻐서 몇 알 주워왔을 뿐이고, 몇 날 며칠을 지나도록 아무도 관심이 없는지 탱자들이 그대로 뒹굴고 있을 뿐이고, 놀고 있는 탱자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주머니 가득 주워왔을 뿐이고, 옆에서 보던 할머니가 그 탱자 주워다 뭐하려고 하냐고 걱정스럽게 쳐다봤을 뿐이고, 글쎼 나도 잘 모르겠어서 인터넷에서 탱자에 대해 찾아봤을 뿐이고, 세상에 이 탱자가 아토피(이외에도 만병통치약 수준으로)에 좋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고, 아토피로 고생하고 있는 내 친구들의 딸과 아들이 번갈아 생각났을 뿐이고, 탱자를 잘 말려서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이 났을 뿐이고, 이왕 하는 거 더 욕심을 부려 아직 떨어지지 않는 탱자를 따려고 했을 뿐이고, 탱자나무의 빽빽한 가시에 찔려서 포기하고 그냥 돌아왔을 뿐이고, 탱자 솜털에 박힌 먼지까지 깨끗하게 씻어보겠다고 빡빡 문질렀을 뿐이고, 그러다 내 피부도 함께 벗겨졌을 뿐이고, 탱자를 반으로 잘랐더니 그 안에는 씨가 한 가득 들었을 뿐이고, 자르고 씨 빼내느라 손에 물집이 생겼을 뿐이고, 가시 찔린 곳으로 시고 신 탱자 즙이 스며들어 쓰라렸을 뿐이고, 탱자 말리기 좋은 가을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을 뿐이고, 시간은 하루, 이틀, 사흘, 세월아 네월아 하고 흘러갈 뿐이고, 탱자는 예쁘게 말라갈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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