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내 이름은 빨강

by 무엇이든 씁니다

최근 연이어 읽은 두 책(보건교사 안은영/정세랑,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김혼비)은 한 친구를 보고 싶게 만들었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친구와 비슷해서, 김혼비는 친구와 반대여서. 이 사실을 알려주고 책도 보내주려고 카톡으로 말을 걸었다. 우리 텔레파시 통했나 보다, 어젯밤에 니 생각했었어. 뭐래, 이런 낯 간지러운 말 질색팔색하지만 일단 접수! 믿어주기로 한다. 얼마 전에 우리 집에 다녀간 친구는 다시 놀러 오고 싶다고 했다. why not? 당장 오라고 했더니(사실 당장 올 거리는 아니..;;) 단풍이 예쁘게 물들면 얘기해달라고 했다. 벌써 단풍이 한창이라고, 마침 테라스에 앉아있었기에 증거물로 우리 집 앞 노란 은행나무 사진을 제출했다.


2층 테라스에서


그랬더니 빨간색 위주로 말해달라고 했다. 뭬야? 이제 빨간색 보내주면 보라색 보내달라고 그런 거 아니겠지? 하긴 친구의 유별난 빨강색 사랑을 안다. 지금 나이 들어가면서가 아니라 아주 새파랗게 젊었을 때도 부담스러운, 100미터 전방에서도 너만 보여, 하는 빨간 롱코트를 입고 다니셨다. 그런데 하필 우리집 주변에는 빨간색이 잘 보이지 않는다. 뒷산에는 참나무와 밤나무가 많고 수종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누리끼리는 해도 알록달록 예쁠 것 같지는 않다. 친구를 꼬시려면 뭐, 급조라도 해야 하나. 사실 나도 빨간색이 좀 고팠던 참이었고, 마당에 빨간 단풍이라도 심어야 하나, 고민하던 참이다. 그렇게 온통 머리 속에 빨간 색 생각 뿐이었는데, 정말 내 눈앞에 빨간색이 나타났다. 그것도 그냥 빨간 색이 아니라 그라데이션으로 너무나 아름답게 물들고 있는 붉은 색들!!


매일 지나던 곳인데, 몰랐다. 이렇게 소리소문없이 물들고 있었구나. 빈 집의 낡은 벽을 타고, 올라가던 중에 가을이라는 시간을 만났나 보다. 영차영차, 열심히 담을 타고 올라가다가 멈추고 물들고 있었다. 친구에게 보내고 기다려보자. 이걸 보고 오지 않고 배기겠는지...이 빨간 맛은 지금 이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