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

나의 모과 선생님

by 무엇이든 씁니다

친구의 추천으로 넷플릭스에서 '나의 문어 선생님'을 봤다. 눈이 꽤 높은 친구가 극찬한 탓애 기대는 높아질 대로 높아져 있었고, 감동받을 준비도 이미 되어있었다.


역시 바닷속 세계는 뷰 맛집이다. 마치 또 다른 외계 행성처럼 신비롭고 경이롭다. 특히 다시마 숲을 수영하는 모습은 뭔지 잘 모르는 두려움과 뭔지 알고 싶은 탐구욕을 동시애 불러일으켰는대 흡사 우주를 유영하는 것 같이 치명적으로 매혹적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문어가 지적이고 교감할 줄 아는 동물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고, 포스터, 스틸 컷 자체가 이미 스포 역할을 하고 있었기에 내용 자체가 매우 놀랍거나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딱 내가 예상한 수준으로 잔잔했다. 심지어 어느 지점에서는 살짝 졸기도 했다. 이 다큐를 보면서 앞으로 문어를 먹지 말아야겠다는 다짐 비스름한 것도 하지 못했다. 그냥 산 낙지처럼 산 채로 먹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 정도만 확인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잔잔하게 흘러간 가운데 살짝 소름이 돋았던 황홀한 장면이 있었다. 문어가 그토록 경계했던 크레이그에게 먼저 손(문어 다리)을 뻗어서 사람의 손을 쓰다듬으면서 교감할 때였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보러 가서, 막 달려들지도 개입하지도 않고 그저 기다려준 사람에게 어찌 손을 내밀어 인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느낌 뭔지 알 것 같았다. 최근 내게도 그런 존재가 있었으니...



나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동네를 산책한다. 어느 날 내 발 밑에 모과 한 알이 떨어졌다. 모과를 모르는 사람이 봐도 '모과'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모과'답게 생긴 '모과'였다. 거친 돌바닥에 쿵 하고 떨어진 탓에 상처가 나기도 했고, 아무리 모과라고 해도 너무 심하게 울퉁불퉁하게 생겨서 소유욕이 생기지 않아 그냥 지나쳤다. 그리고 다음 날, 그다음 날에도 모과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렇게 여러 날을 보다 보니 나에게 손을 내미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한 알 두 알 주워 모은 모과가 어느새 한 바구니가 됐다.


처음 모과를 주워왔을 땐 모과차를 만들어서 마셔보겠다고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채 썰어서 말려도 보았다. 하지만 손에 물집 잡히는 고통을 감수할 만큼의 충분한 향과 풍미가 나오지 않아 중단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잘 주워가지 않나 보다) 모과는 사람을 세 번 놀라게 한다는 말이 있다. 처음엔 너무 못 생겨서, 두 번째는 향이 너무 좋아서, 마지막은 향에 비해 맛이 없어서. 사람들이 과일전 망신을 모과가 시킨다고 하는데, 내게는 모과가 얼마나 예뻐 보이는지 모른다. 볼수록 매력 있는 볼매라고 해야 하나. 뻔하지 않게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울퉁불퉁함은 못 생김이 아니라 모과를 모과답게 하는 개성이다. 그 울퉁불퉁하고 끈적끈적한 표면에서 뿜어내는 향도 모과를 모과답게 한다. 어떤 부가가치가 아니라 그 존재만으로 충분한 것들이 있는데 그게 모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과를 보고 있으면 '지금, 여기에, 이렇게 있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모과는 그 존재만으로 충분하다. 모과는 모과차로 태어나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모과차 이전에 이미 모과 자체로 완성된 실제로 주체적으로 실존한다. 모과를 만지면 뚝심 같은 게 느껴지는데, 사람들에 의해 모과차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물렁해지는 쪽으로 진화하지 않고 이렇게 쭉 계속 갈 것 같다. 이렇게 실존주의를 가르치는 모과가 요즘 나의 선생님이다. 그러니 앞으로 우리 집 모과를 보는 분들은 '이거 다 뭐하려고?'라고 묻지 말고, '여기 모과가 있네'라고 말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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