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럽고 홀리한 겨울의 집
내가 경험한 미국의 크리스마스와 우리의 크리스마스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우리의 크리스마스는 밖으로 향한다면, 미국의 크리스마스는 집으로 향한다는 점일 것 같다.(이번 크리스마스는 전 세계가 집으로 향해야 할 듯) 미국의 크리스마스에는 집과 가족이 중심에 있다(물론 교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집과 가족이 더 비중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국에 있을 때 놀란 점은 생각보다 매우 가족주의적(!)이라는 거였다. 내가 살던 곳이 미국에서도 시골 축에 속하는 미시간 랜싱이었고, 내가 살던 마을이 중장년의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많이 살아서 그럴 수도 있고, 미국은 매우 개인주의적일 거라고 생각했던 선입견 탓에 대비적으로 더 그렇게 느껴졌다. 그 가족주의는 우리로 치면 설날 명절에 해당하는 크리스마스에 정점을 찍는다.
또 한 가지 놀란 것은 미국인들은 거의 1년 내내 주기적으로 장식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장식을 좋아한다. 장식이 갖는 의미를 보여주는 존 그리샴 Skipping Christmas라는 소설도 있다. 이 소설은 주인공 부부가 크리스마스 장식을 건너뛰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우리나라로 치면 종갓집 며느리가 설날에 제사 안 지내고 해외여행 가겠다고 선언하는 정도랄까. 암튼 크리스마스 장식을 안 했다는 이유로 온 동네의 주목+비난을 받고 심지어 지역신문에 실릴 정도로 이슈가 된다. 그러니까 초라할지언정 나름대로 뭔가 꾸며야 한다는 압박감이 작용한다.
미국에서 크게 기리는 명절은 부활절(4월 어느 날), 독립기념일(7월 4일), 핼러윈(10월 31일), 추수감사절(11월 4번째 목요일), 크리스마스(12월 25일), 특히 하반기에 주요 행사가 모여 있는데, 핼러윈 끝나면 추수감사절 준비하고, 추수감사절 끝나면 크리스마스 준비를 시작할 정도로 거의 1년 내내 기념일 장식을 한다. 특히 크리스마스는 우리나라의 설날에 준하는 대명절이어서 한 달 내내 크리스마스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대청소를 하고, 다락이나 지하에 있던 크리스마스 장식을 끌어내서 먼지를 털어내고, 크리스마스 마켓에 가서 그 해에 새로 나온 오너먼트를 사고, 가족과 친지, 친구들에게 줄 카드와 선물을 고르고(카드 문화도 매우 발달되어 있는데 카드 고를 때 인쇄된 메시지를 일일이 읽으면서 사람에 따라 다른 카드를 고르기 때문에 하루 종일 걸림;;), 크리스마스 리스를 만들고, 크리스마스 나무를 사러 가고,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고, 크리스마스 음식을 준비한다. 내가 있던 곳 가까이(2시간 남짓)에는 Frankenmuth라는 크리스마스로 특화된 마을이 있어 1박 2일로 (아이) 쇼핑하러 가기도 했다. 거기엔 크리스마스 관련한 모든 것이 있어서 나 같은 뜨내기에게도 지름신이 제대로 강림한다.
할머니에게 크리스마스 준비에 얼마를 쓰시는지 물어봤는데, 대략 5000달러(2005년 기준)라고 하셨다. 가족들, 친구, 동네 이웃들 선물 사는데 가장 큰돈을 쓰는데, 할머니가 선물을 사고 개인 수표를 추가로 넣는다고 했다. 미국답게 모든 것을 쇼핑으로 해결하는 와중에 내가 머물던 집의 미쿡 할머니는 크리스마스 음식과 크리스마스 리스만은 직접 만드셨다. 특히 정통 루터교 신자였던 할머니는 리스에 더 많은 의미를 담아 정성을 쏟으셨다. 정원에 있는 전나무와 솔방울, 크리스마스 볼을 사용해서 자신만의 리스를 만들어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선물로 나눠주곤 했다. 그 덕분에 나도 옆에서 거들고 배달하러 같이 다니면서 마을마다, 집집마다 다른 크리스마스 장식 구경을 했다.
역시 뭔가 배워두면 언젠가 써먹게 된다. 내가 직접 리스를 만들게 될 줄이야. 계획한 것도 아니었는데 마침 측백나무와 에메랄드그린, 남천나무가 마당에 있다. 리스를 안 만들기도 어렵다. 집에 있는 것들로만 대충 리스를 만들었을 뿐인데 퇴근한 남편이 보더니 이거 산 거 아니냐고!!(이거 칭찬인 거지? 대충 만든 게 이 정돈데 작심하고 만들면 난리 나겠지?ㅎㅎ) 리스 하나 만들고 자부심 뿜뿜인데 사실 나같은 똥손도 너무 쉽게 만들 수 있다.
남편과 함께 현관문에 리스를 걸었다. 마침 현관문이 나무 소재라서 제법 잘 어울린다. 크리스마스 리스 하나 걸었을 뿐인데 집이 달라 보인다. 파릇파릇해서 집에 생기가 돌고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설 때 막 홀리 해지는 이 느낌 어쩔! (물론 이 느낌의 한계효용은 급감하겠지만^^) 이제 아직 산타를 믿는(척하는) 12살 딸의 마음을 산타 할부지가 헤아려 선물만 잘 주시면 그런대로 완벽한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