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밀도

공간의 밀도와 밀도 있는 시간

by 무엇이든 씁니다

“벌써 자?”

옆집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아니, 안 자는데. 왜?”

“아니, 귤 좀 가져다 주려는데 불이 다 꺼져 있어서...”


밖에서 보면 우리 집에 불이 다 꺼진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 이유는 우리 세 식구가 한두 평 남짓한 방구석에 처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 방구석을 딸은 TV 방이라고 부른다. 딸이 집에 놀러온 손님들에게 TV 방이라고 소개하길래(좀 없어 보여서) TV방보다는 패밀리룸으로 불러달라고 했더니 그때부터 ‘엄마가 패밀리룸이라고 불러달라는 TV 방’이라고 소개하는 걸 보고, 결국 나도 TV 방이라고 부른다.



방이라고 하기엔 좀 무리가 있으려나. 방이라고 함은 벽과 문으로 완전히 분리되어야 하는데 TV 방에는 문이 없다. 원래 설계에는 포켓도어라고 벽 안으로 들어가는 미닫이 문이 있었다. 그런데 그 놈의 돈, 시공 견적 조정하면서 과감하게(멋있게 아니고 눈물 한두 방울쯤 머금고) 문을 없애버렸고, 문 대신 필요시 분리할 수 있도록 커튼을 달았다.


궁여지책으로 한 결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 되었다. 문이 공간을 폐쇄적이고 단절되게 만드는 것과 달리 커튼은 유연하게 분리하면서 방을 아늑하게 만드는 부수적인 효과가 있다. 특히 요즘같은 겨울엔 찬 기운을 차단하는 보온 효과가 더해져 따뜻하다. 실제로 이 방과 이어진 거실과 1-3도 차이가 난다. 여기에 노란색 스탠드를 켜면 시각적으로 더욱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된다. 이렇게 이 방에 커튼 치고, 스탠드 하나 켜놓고 TV 보면서 군고구마 까먹고 있으면 밖에서 보이지도 않는 딴 세상이다.



우리는 TV 방에서 이름에 충실하게 TV나 영화를 본다. 그런데 초신세대답게 멀티 태스킹이 되는 열두 살 따님은 우리가 보는 TV를 BGM으로 삼아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우리와 토크를 한다. 거실에 별다방 못지않은 긴 테이블이 있고, 2층에는 회장님 데스크 부럽지 않은 넓다란 공부 책상이 있고, 자기 방에는 딸의 로망이었던 뷰로형 라이팅 데스크가 있지만, 굳이,,, 이 좁은 TV 방에서 공부란 걸 한다. 심지어 우리가 TV를 보는 와중에도 남편과 나 사이에 끼어 앉아 수학 문제를 푼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여기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TV앞에서 문제를 풀고 있는 딸을 공부방으로 쫓아 버리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둔다. 공부는 잘 모르겠고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이 훨씬 소중해서 그냥 둔다. 사춘기에 임박한 딸이 자기 방문 콱 닫고 쏙 들어가 두문불출하지 않고 우리 곁에 있어 주는 게 어딘가, 감지덕지하면서.


이 방에 모여 있다 보면 예전 단칸방에 다섯 식구 살던 생각이 난다. 아랫목에서 담요 덮고 고구마 까먹으면서 TV 보고 엎드려 만화책 보던 그 시절, 삼 남매가 한 이불 덮고 춥다고 서로 이불 잡아 댕기다가 누가 이불싸움에서 자유로운 중간에 누울 것인가로 다투고 결국 누군가는 혼나 눈물, 콧물 훌쩍이다 잠이 들었던 그 시절은 엄마와 내가 공통적으로 가장 행복했던 시간으로 꼽는다. (내 동생은 아닌 듯) 프라이버시라고는 1도 없는 시절이지만 지나고 보니 함께 살 붙이고 복닥거리며 밀도 있게 살던 때가 좋았다.


물론 지나고 보니 그런 거니까 단칸방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 집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이런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다. 커튼 하나로 만들어진 공간의 밀도와 그 안에서의 밀도 있는 우리의 시간, 그 둘 간의 어느 정도의 상관관계를 느껴보는 중이다. 분명한 건 나는 지금 이 밀도를 사랑하고, 나중에 딸이 컸을 때 이 밀도를 행복하게 기억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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