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블링블링

#1. 스댕 세숫대야

by 무엇이든 씁니다

난 천상 청개구리이다. 유행하는 건 따라 하기 싫고(어차피 최신 유행을 따라갈 재력도, 성실성도 없지만ㅋ), 블록버스터 영화는 보기가 싫고(그랬다가 뒤늦게 혼자 찾아본다ㅋ),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은 피하게 되고(군자대로행이라는데 군자 되긴 글렀음), 주위에서 다 한다고 하면 왠지 하기 싫다. 그러다 꼭 뒷북을 친다.


당근도 그랬다. 주위 사람들이 다들 당근, 당근 할 때도 나는 당근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다. 청개구리라 그런 것도 있고, 귀차니즘 때문이기도 했다. 새로운 어플 까는 것도 귀찮고, 뭘 사들이는 것도, 뭘 팔러 내놓는 것도 귀찮고, 모르는 사람이랑 대화하고 만나는 건 더 싫었다. 그렇게 쭉 모르고 살 뻔했는데 드디어 만났다. 집을 짓고 이사 오면서 필요한 건 많은데 돈이 궁했다. 집 짓느라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다 쓴 탓에 말 그대로 하우스푸어가 되고 말았다. 궁여지책으로 필요한 물건을 구하러 당근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늦바람이 무섭다고 순식간에 당근 홀릭이 되었다.


나를 홀린 건 스댕(요건 이렇게 읽어야 제맛이다) 세숫대야다. 집 짓고 아빠가 마당에 수돗가를 만들어주셨는데, 화룡점정이 될 스댕 세숫대야를 꼭 갖고 싶었다. 뒷집 할머니 수돗가에 다소곳이 엎어놓은 스댕 대야는 나의 소유 욕망을 부추겼다. 하지만 그 옛날 스댕 대야를 어디서 구할지 몰랐다. 그런데 이게 웬 떡이란 말인가. 당근 앱을 깔고 첫 방문을 한 날 스댕 대야가 내 눈 앞에 떡하니 나타났다.


신일 스댕 대야, 가격 5000원

전체적으로 상태가 좋은 편이에요.

꽃무늬가 있어서 디자인도 고급스러워요.

마지막 사진에 보시면 바닥에 작은 얼룩이 있는데 뭔지 잘 모르겠네요.

사이즈는 바닥지름 40, 전체 지름 45센티입니다.



글을 보면 사람이 잠깐 보인다. 전반적인 상태, 디테일, 하자, 크기 딱 4줄짜리 설명인데도 왠지 모르게 신뢰가 갔다. 신일은 선풍기 만드는 그 회사 아닌가?

굳이 신일이라고 쓴 거 보면 신일 대야가 좋은 건가 싶다. 디자인을 언급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꽃무늬가 있는 스댕 세숫대야라니! 5만 원 짜리도 아니고 5천 원짜리에 다양한 각도의 사진을 일곱 장씩 찍어 올려놓은 걸 보면 세심한 분인 거 같다. 뭐 어쨌거나 운명처럼, 선물처럼 다가온 물건이기에 당장 좋아요! 를 누르고 대화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스댕 대야 제가 모셔오고 싶어요!”


정말 모셔오고 싶었다. 스댕 대야를 득템 한다는 생각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첫 거래라 기분이 묘했다. 사실 모르는 사람과 만나서 말 섞는 거 좋아하지 않아서 빨리 물건 받아서 집에 갈 생각만 했다.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하고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중년의 여성분이 스댕 대야를 들고 내려오셨다. 내 눈엔 블링블링 그 자체였다. 그토록 찾던 스댕 대야를 품에 안고 돈을 건네드리고 떠나려던 참이었다.



"저어기,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그 세숫대야 어디에 쓰시려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아, 저희 집 마당에 수돗가가 있어서 거기서 쓰려고요. 엄청 갖고 싶은 물건이었어요.”

"아, 그러시구나. 젊은 분 같은데 스댕 대야를 어디에 쓰려나 궁금했어요. 아파트에서는 스댕 대야 쓰기가 어렵거든요. 타일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요. 그래도 언젠가 쓰겠지 하고 보관하고 있다가 이번에 이사하면서 내놓은 건데 제대로 임자를 만났네요. 잘 쓰셨으면 좋겠어요."


음, 이 느낌 뭐지? 난 첫눈에 반하고, 사람에게 쉽게 호감을 느끼는 스타일이 아닌데, 이분에게 호감을 느꼈다. 이 짧은 대화에서도 성격, 태도, 취향, 물건을 대하는 태도 등을 느낄 수 있었다. 갖고 싶은 물건을 싸게 구해서도 좋은 건 기본이고, 소소한 이야기와 느낌은 덤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수돗가에 자리 잡은 스댕 대야를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드렸다.


마당 수돗가 풍경


난 원래 쇼핑을 싫어한다. 뭘 새로 사는 걸 싫어하고, 사러 가는 행위를 좋아하지 않고 어려워한다. 우리 집에서 쇼핑은 죄다 남편 몫이다. 하지만 당근엔 단박에 빠져들었다. 당근엔 특별한 것이 있다. 공장에서 찍어낸 제품, 마트에 전시된 상품이 아닌 사람의 물건이 있다. 사람의 물건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이야기가 있다.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물건이 나를 찾아오는 느낌이다. 친구들이 놀러 오면 새집보다 헌 물건 자랑에 열을 올렸었다. 하지만 요즘 코로나 19로 집콕하다 보니 집에 놀러 오는 친구도 없다 보니 자랑할 데가 없었는데 여기에 자랑 좀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