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변화

사고팔고 헐고 세우고

by 무엇이든 씁니다

집을 짓기는 어려워도 집을 없애는 건 한 순간이다. 하긴 뭐는 안 그런가? 돈을 벌기는 어려워도 쓰는 건 한 순간이고, 오랜 관계도 한 순간에 무너지고 사라진다.


아침부터 밖이 소란스러워 내다 보니 주황색 포클레인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길 건너 빈집을 철거하려는 모양이다. 우리와 인연이나 추억이 있었던 곳도 아닌데 누군가의 집이었던 곳이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자니 괜스레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뒷집 할머니도 나와 계셨다. 할머니의 큰 형님 댁이다. 내 마음이 이런데, 할머니의 마음은 어떨까? 지척 간에 살면서 쌓였던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썩거리지 않을까?



주변의 변화는 우리의 생각을 분주하게 만든다. 땅이 팔린 건가? 누가 샀을까? 어떤 건물이 들어설까? 그에 따라 우리의 삶의 질도 달라질 것이다. 좁은 땅에 다닥다닥 붙어사는 이상 어쩔 수 없다. 우리 집도 이웃들에게 그랬다.


우리가 집을 지으면서 앞집 아주머니의 주방에서 설거지하며 바라보던 뒷산 풍경을 가리게 되었고(그 풍경을 우리가 보고 있고), 우리가 부지를 높이면서 옆집 할머니의 마당을 훤히 내려다보게 되었고, 우리 집이 들어서면서 하루 종일 햇볕이 풍부했던 뒷집 할머니의 텃밭을 그늘지게 만들었다. 조만간 공터에 들어설 건물은 우리 집 또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누려왔던 무언가를 간섭하게 될 것이다. 땅이 최대한 늦게 팔려서 오래도록 비어 있거나, 적어도 우리 집 시야를 많이 가리지 않는 작고, 낮은 집이 들어섰으면 좋겠다, 라는 바람은 얼마나 부질없고 이기적인가. (집을 지으면서 나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일 수 있는지를 이미 확인한 터라 크게 놀랍지도 않다만~ㅎ)


공터에 남은 탱자나무 가시의 위엄


빈 곳은 곧 채워질 것이다. 사고팔고 헐고 짓고, 가 빠른 우리나라 아니던가. 집이 있던 곳에 집이 생기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 이상의 변화가 아니길 바랄 뿐이지만, 그린벨트라고 영원불변하지 않다. 우리가 이사온지 불과 6개월 만에 이웃에 제법 큰 카페가 생겼고, 뒷산 너머로는 서울-문산 간 고속도로가 개통되었고, 차로 10분 거리에 창릉 신도시 개발을 앞두고 있고, 연말에 GTX 창릉 역이 확정되면서 인근 아파트 값이 순식간에 수억씩 뛰었다고 한다. 태풍의 눈에 있는 기분이다.


"땅이 팔렸나요?"


마침 길 가다 만나게 된 뒷집 할머니에게 여쭈었다. 뒷집 할머니네의 큰댁이기에 사정을 잘 아실 거였다. 팔린 건 아니라고 한다. 건물이 있으니 세금(재산세)이 나와서 철거한 것이라고 한다. 당장 뭐가 생길 건 아니어서 한시름을 놓았지만, 땅의 모양이 시원하게 잘 드러났으니 땅주인이 조만간 나설지도 모르겠다.


며칠 만에 사람이 살았던 모든 흔적이 깨끗이 사라지고, 탱자나무만이 쓸쓸하게 남아 사람 살던 곳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나저나 다른 나무는 죄다 베면서 왜 탱자나무만 남겨두었을까? 1) 탱자 열매 따 먹으려고, 2) 탱자나무가 귀신을 쫓아주기 때문에 3) 탱자나무에 영험한 기운이 있어서, 4) 소설 태백산맥에서 나오는 슬픈 전설처럼 탱자나무에 처자의 한이 서려 있기에 차마 베어낼 수 없었던 걸까. 그러고 보니 우리 동네에 다녀보면 옛집을 허물고 새 건물을 올린 곳에도 탱자나무는 남겨둔 것을 볼 수 있다(그래서 내가 주인 없는 탱자들을 주워 말려서 아토피가 있는 친구 아들, 딸들에게 나눠 줄 수 있었고, 그 아들, 딸들은 탱자를 우린 물에 목욕을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꽤 효험이 있다고 한다) 암튼 앞으로 이 땅의 변화가 조용하던 우리 동네에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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