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집과 결로
날아갈 것 같다. 몸과 마음이 너무 홀가분하다. 집 한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했던 사다리도 걷어 치우고, 임시적으로 결로를 해결하기 위해 총동원되었던 서큘레이터, 보조 난방기구도 철수시켰다.
비행기 소음 같았던 서큘레이터 소리에서도 해방이다. 한번 결로에 놀라더니 퇴근하면 습관적으로 서큘레이터를 켜는 남편에게 비행기 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더니 당신 비행기 타는 거 좋아하잖아,라고 했을 땐 진심으로 빡쳐서 한 대 칠 뻔했다. 아니 이 양반아, 난 비행기 타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비행기 타고 어디 가는 걸 좋아하는 거거든!!! 그리고 농담할 기분 아니라고!! 온갖 기구를 주렁주렁 달고 살았던 한 달 남짓 고난의 행군 끝에 해방이라니 정말 살 것 같다.
지난겨울 얼마나 추웠나. 눈도 참 많이 왔다. 보통 잘 지은 새집은 한 5년간 춥지 않다는 말이 있다. 요즘 단열재 품질도 좋아지고, 단열 기준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안온한 새 집에서 잘 지내던 어느 날 작지만 신경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의문의 소리를 찾기 위해 계단에 앉아서 가만히 들어보니 천장에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였다. 거의 20초 간격으로 한 방울씩 떨어지다 말다를 반복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우리는 며칠 지켜보기로 했다. 우리 선에서 해결하고 싶어서 인터넷을 뒤적거렸다. 그러다 반복되고 뭔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시공 소장님과 설계하신 소장님께 SOS를 쳤다.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시공 소장님이 달려왔다. 일단 집 내부를 살핀 뒤 다음날 혹시 지붕에 뭔가 문제가 있는지 전문가들과 지붕 위에도 올라가 보기로 했다. 왜 집은 비만 안 새면 좋은 집이라고 하는지 뼛속까지 체감했다. 다행히 지붕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우리 집 지붕은 경사지붕이지만, 실내에서는 평지붕으로 막았는데, 그 천장과 지붕 사이의 공간에서 결로가 생긴 거였다.
보통 새집 지은 후 1~2년 동안은 결로가 생길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콘크리트로 지은 집은 습기를 머금고 있기 때문에 난방에 의해서 집 안으로 습기를 내뿜게 되고 그게 결로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충분한 난방과 충분한 환기가 필수라고 했다. 사실 우리는 나름대로 그러고 있었지만 더 열심히 광적으로 환기를 했다. 이후 현장 소장님이 여러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했다. 입주하기 전 충분히 베이크 아웃이 안 된 탓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집에 책이 많아서 여름에 습기를 많이 머금고 있었다가 내뿜는 것 같다고 얘기하는 분도 있었고, 지난여름 긴긴 장마에 제습이 제대로 안 된 탓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중앙 보이드를 둔 구조의 문제로 보는 사람도 있었다. 남편은 욕실 수증기가 천장으로 넘어오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며 일단 2층 욕실에 샤워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그렇게 원인을 찾아가고 이런저런 노력을 하던 어느 날, 새하얀 벽을 타고 노란 물이 주르륵 흘렀을 때는 정말 참담했다. (새 차를 긁었을 때 스트레스의 10배쯤) 그걸 닦으려고 긴긴 사다리를 펼쳐 나는 잡고 남편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을 때 속으로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했다. 뭔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 짜증과 불안이 일상을 덮쳤고, 나는 이 모든 화를 자초한 남편에게 스트레스를 쏟아냈다. (왜 집을 짓자고 해서 사람을 이렇게 고생시켜...로 시작하는 똑같은 레퍼토리)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얼마든지 문제는 생길 수 있다. 문제 그 자체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게 더 문제였다. 뭔가 알 수 없는 기운이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자다 깨기도 했다. 그나마 우리 집을 지은 건축가들이 나서 함께 고민을 해주고 있는 점은 위로가 되었다. 문제보다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지금까지 우리가 내린 가장 유효한 원인은 난방 부족이다. 우리는 한 겨울에도 실내온도 18도, 20도를 넘기는 일이 거의 없었다. 우리 세 식구는 크게 추위를 타지 않는 까닭에 그 정도면 충분했다. (아니 가끔 추웠지만 그럭저럭 참을 만했다ㅎ;;) 어느 날 시공 소장님과 함께 우리 집을 방문한 한 건축가가 우리 집 거실에 잠시 서 있더니 집이 습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방금 옆집을 다녀왔기 때문에 바로 비교가 된다고 했다. 우리는 늘 살고 있어서 몰랐고, 전에 살던 집보다는 훨씬 쾌적해졌기 때문에 더 몰랐다. 아차, 싶어 실내온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22도 정도에도 나는 숨이 막혀서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딸아이도 덥다고 잠옷을 다 벗어젖히고 이불을 차내고 잤다. 아무리 더워도 결로의 고통보다 낫겠지. 근 한 달 동안 난방하고 환기하고 난방하고 환기하고를 반복했고, 온갖 보조 기구들을 이용해 습을 날리려고 애를 썼다. 그렇게 혹독한 겨울을 나고 드디어 봄이 왔고, 결로에 대한 근심 걱정에서 해방되니 날아갈 것만 같은 것이다.
어찌 보면 집을 짓고 산다는 것은 매우 불편하고 피곤한 일이다. 신경 쓰고 해결해야 할 일이 매우 많고 계속 생겨난다. 하지만 어느덧 불편함과 피곤함도 일상이 되어간다. 결로의 흔적이 할퀴고 간 상처도 제법 아물어간다. 처음엔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았는데 점점 익숙해지겠지.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런 불편함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은 게 문제가 생기면 온 식구가 저절로 대동 단결하게 되고, 아파트가 아닌 집에 살면 계절과 날씨에 매우 민감하게 되어 감각이 늘!!! 깨어 있게 되고 조금 다른 시공간을 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환기는 습관이 되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나? 어차피 편리하게 사는 것이 목표인 적도 없고, 편리한 불행보다 불편한 행복이 낫다고 생각한다. (물론 또 문제가 생기면 세상 침울해할 수 있지만, 지금은 일단 알흠답게 불편한 “행복”이라고 해두자!) 이 집에 사는 한 나를 울고 웃게 하는 이 문제들을 일단 불편한 행복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부디 견딜 수 있는 정도로만 살살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