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파테크 합니다

심오한 재테크는 몰라서

by 무엇이든 씁니다

LH 문제로 난리다. 우리가 사는(live) 땅과 그들이 사는(buy) 땅은 천지차이인 게 분명하지만, 나는 그 심오한 차이를 알 재간이 없다.


나는 일찌감치 돈을 포기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언제부턴가 나는 돈과 인연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돈을 많이 벌 능력도 없다. 돈을 알뜰히 모으거나 돈을 불리는 기술과 재능, 하다못해 근면성실함도 없다. 통장은 대학 때 처음 만들어 지금까지 쓰고 있는 보통예금통장 1개가 전부고, 신용카드와 마이너스 통장 없이 철저히 현금주의에 입각한 단식부기로만 살고 있다. 이런 내가 오죽 답답하고 걱정됐으면 친구가 ‘네 개의 통장’이라는 책을 사주고 펀드 가입을 권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쪽 머리는 아예 발달하지 않아서 듣는 순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서 포기했다. 요즘 너도나도 한다는 주식, 비트코인, 갭 투자니 하는 재테크 수단들 죄다 나에겐 외계어 수준이라 가치 판단 이전에 복잡하고 어렵게만 느껴져 그 언저리에도 가보지 않았다.


어찌 보면 모태 포기자인 것 같다. 부모님이 뼈 속까지, 한결같이 그러하시다. 평생 돈은 못 벌었어도 빚은 지고 살지 않았다는 게 부모님 평생 자부심이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라며 돈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어릴 땐 그 소리가 그렇게 듣기 싫었는데 어느새 닮아가는 나를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부모님은 처음 살림을 시작한 자리에서 쭉 살고 계시고, 가장 큰 지출인 차를 살 때도 몇 년간 목돈을 모아서 현금으로 가져가 산다. 부모님 사전엔 할부, 대출, 신용카드가 없다. 빚도 자산이라고, 살림을 불려 가기는커녕 살림이 늘 제자리걸음인 게 철없을 땐 정말 싫었는데 나도 모르게 나도 그러고 살고 있는 걸 보며 어깨너머로 배우는 게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내가 집 지을 땅을 사고 집을 지었다. 집을 지을 마음이 1도 없었던 나는 집 지을 생각 100%인 남편에게 결국 백기를 들고 말았다. (어떻게든 안 하려는 자와 어떻게든 하려는 자가 붙으면 하려는 자가 이긴다) 그 결과 작지만 부동산이라는 게 생기고, 빚도 함께 생기면서 단순 부기에서 복식부기의 삶으로 진입했다. 평생 내 사전엔 없던 것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마음이 시끄러워졌다. 하지만 또 나를 위로하고 나를 즐겁게 하는 것도 많다.


요즘 같은 봄날엔 역시 땅이다. 작은 땅에 바닥면적 20평짜리 집을 앉히고 나니 남은 건 손바닥 만한 마당이지만 나무도 심고 이것저것 심고 가꾸면서 알뜰살뜰하게 쓸 궁리를 한다. 한쪽 화단에 고추랑 토마토를 심으려고 거름도 넣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남편이 파를 심었다. 요즘 파가 비싸다면서 우린 파테크나 하자면서ㅎㅎㅎ. 하긴 우리 딸이 좋아하는 대파, 많이 심으면 좋지! 대파 한 단을 사서 파란 부분은 댕강 잘라먹고 아래 뿌리 부분을 심었다. 오늘 동네 산책하다가 야산에서 발견한 야생 쪽파를 뿌리째 뽑아와서 그 옆에 옹기종기 심었다. 남들의 재테크에 비하면 소꿉장난에 지나지 않지만 아몰랑, 우리는 우리 수준에 딱 맞는 파테크나 하며 살자꾸나.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