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온다

by 무엇이든 씁니다

봄은 언제, 어디서 오는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누구는 따뜻한 햇볕에서, 누구는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에서 봄을 느끼고, 누구는 봄꽃을 보며 봄이 온 것을 느낀다. (특이하게 딸아이의 봄이 온 것을 몸으로 먼저 느끼곤 했다. 건선이 있어 겨울이면 고생을 했는데 설이 지나면서 가렵지 않게 되면, 가려움에서 해방된 딸은 ‘엄마, 이제 봄이 오려나 봐’라고 말하곤 했다.)


나에게 봄이 오는 곳은 땅이다. 우수(雨水)가 지나면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땅이 폭신폭신해지고 벌어진 틈 사이로 흙냄새가 올라온다. 포장도로가 아닌 흙길을 걸어야 느낄 수 있다. 나에게 봄은 오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올라온다고 표현해야 맞을 것 같다.


봄이 올라올 때 걷다 보면 냉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쉽게 보이는 건 아니다. 겨울 냉이는 아무에게나 눈에 띄고 싶지 않은지 보호색을 하고 있다. 광합성이 부족해서 살짝 보라 빛, 생기 없는 초록, 빛바래거나 마른 황토색이 섞여서 땅 색깔과 거의 비슷한데다 땅바닥에 정말 딱 붙어 있다보니 여간해서 잘 보이지 않는다. 특히 꼿꼿하게 서서는 어림도 없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도 한참 땅바닥에 멍을 때려야 갑자기 보이기 시작한다. 하나를 발견하면 그 주위에 냉이가 퍼져 있다.


보호색을 한 냉이


냉이는 사실 겨울부터 있었다. 추워서 밖에 나가지 않고, 추워서 땅에 주저앉아 마냥 멍 때릴 수 없고, 어쩌다 발견해도 땅이 얼어서 캘 수 없을 뿐, 겨울부터 냉이는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추운 겨울을 난 냉이는 잎보다 뿌리다. 잎은 마르거나 얼었어도 뿌리는 길고, 향은 짙고, 맛은 진하고 달다.



벌써 냉이가 있겠나 싶지만, 볕 좋은 곳의 냉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있다. 봄에 제일 먼저 피는 꽃은 산수유도, 개나리도, 목련도 아니고 냉이꽃이다. 너무나 작아서, 저만큼 낮아서, 아주 소박하고 겸손해서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땅에 바짝 붙어 핀 냉이꽃이 나의 안부를 묻는다. 보일듯 말듯한 냉이꽃이 어쩐지 위로가 된다. 이렇게 나의 봄은 올라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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