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 꿈을 담은 그릇

#6. 중국 황실 도자기

by 무엇이든 씁니다

끌린다. 어쩐지 자꾸 끌린다. 원래 알록달록 화려한 거 딱 싫어한다. 그냥 무채색의 무난하고 심플한 걸 선호하는 편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가? 알록달록 화려한 색감에 꽃무늬 테두리를 금장한 스타일의 그릇이 내 눈에 딱 띄었다. 보통 나는 당근 마켓에 물건을 팔 때 친절한 설명을 앞세워 주절이 주절이 쓰는 편인데 이 물건은 그냥 한 줄로 '중국 황실 도자기'라고만 쓰여있다. (황실과 도자기 사이에 '스타일'이라는 말이 빠진 것 같지만~~ㅎ)



나이 들면 화려한 게 좋아진다던데 이제 나도 늙은 건가? 나이 들어감을 즐기고 있어서 그다지 서럽거나 거부하고 싶진 않다. 뭐, 취향은 늘 바뀌는 거지, 몇천 원짜린데 샀다가 마음에 안 들면 재 당근 하면서 되지, 하며 사기로 마음먹었다.... 가 1초 만에 안 그래도 그릇이 많은데, 아무리 싸도 또 사들이는 건 아니지, 하며 마음을 접었다. 무엇보다 차로 10분 이상 가야 하는 거리가 나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당근 마켓 초창기에는 30분 거리도 갔었는데 이제 슬슬 꾀가 생겨 차로 10분 이상의 거리, 나의 생활 동선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 무료 나눔이라도 잘 가지 않게 되더란 말씀.



그런데, 이건 운명인가? 꿈에 나왔다. 내가 당근 마켓에서 천 원짜리 그릇을 샀는데, 우리 동네에 사는 문화재청장 아저씨(진짜 우리 동네에 살고 서로의 존재에 대해선 인식하긴 하나 별로 친하진 않음)가 우연히 우리 집에 놀러 왔다가 내 그릇을 보고, 이거 뭔가 심상치 않다고 해서 진품명품에 나가 감정을 했고, 명나라 건륭제 때 황실 그릇으로 밝혀지는 이야기. 이건 대박 꿈인가, 개꿈인가. 가끔 벼룩시장에서 산 그릇이 진짜 골동품으로 밝혀져 때부자가 되는 그런 뉴스를 봤던 거 같다. 나라고 그런 주인공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내 인생엔 요행수 같은 건 없고, 그런 거 바라지도 않지만, 이번엔 욕심이 난다. 안 되겠다. 내 거 하자! 그 사이 8천 원으로 시작한 그릇이 6천 원이 되어 있었다. 오호~!


최근에 GTX역이 신설되면서 아파트 값이 수억씩 뛰었다는 그 아파트였다. 아쉽게도 문고리 거래여서 주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박스에 넣고 아주 정성스럽게 포장된 채 현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기 들듯 조심스럽게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재활용 쓰레기를 든 키 큰 아저씨가 내가 들고 있는 박스를 내려다보면서 그거 뭐예요? 묻는다. 당근 마켓으로 산 그릇이에요, 했더니 아, 그거 좋아요? 요즘에 많이들 하더라고요. 아니, 이거 좀 이상한데. 난 아파트에 살아보질 않아서 잘 모르지만 듣기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이웃들을 만나면 다들 데면데면하고 그런다고 하던데. 수억씩 아파트 값 올라서 옆 사람의 박스에도 관심 가지고 친절하게 말 붙이고 그러는 건가?ㅎㅎ


그런 집에 가져와서 꺼내보니 사진보다 생각보다 더더 예쁘고 고급스럽다. 오오오! 어쩐지 마음에 든다. where are you from? 너 정말 중국 황실 그릇인 거니? 아니 중국에서 오긴 온 거니? 그릇을 워낙에 잘 깨 먹어서 고이고이 모셔만 두었다가 오늘 중화풍 배추찜을 담아보았다. 우와! 화려하다. 밥상에 꽃이 만발한 느낌이다. 오늘 밥상에서 이미 6천 원어치 효용을 다 한 것 같지만, 그래도 명나라 황실 그릇으로 밝혀져 집 짓는라 진 빚 갚을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ㅎㅎ

(혹시 보는 눈이 있는 분은 연락 바람. 후사하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