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는 길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학교

by 무엇이든 씁니다

“그렇게 멋진 장소를 가로수 길이라고 해선 안 돼요. 그런 식의 이름에는 아무 뜻도 없으니까요. 잠깐만요, 이렇게 불러야 해요. 새하얀 환희의 길. 훌륭한 상상력이 깃들인 이름 같지 않아요?”


빨간 머리 앤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빨간 머리 앤이 매슈를 만나 그린 게이블로 가는 길이다. 이 장면에서 이미 끝났다. 앤이 어떤 존재인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 걸어갈 길을 대강 엿볼 수 있다.


앤은 눈같이 새하얀 향기로운 꽃들이 둥근 천장처럼 길게 뒤덮인 가로수 길을 자신만의 이름(새하얀 환희의 길)을 붙여 자신의 길로 만든다. 옆에 배리 씨가 살고 있어서 배리 연못으로 부른다는 호수도 ‘반짝이는 호수’라고 명명하고, 초록 지붕 집 뜰 안에 포플러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무들이 멋진 꿈을 꾸며 중얼거리는 소리라고 말한다. 세상을 자신의 관점으로 재구성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딸아이를 잘 아는 몇몇 친구도 그러고, 딸아이 스스로도 자신이 앤과 많이 닮은 거 같다고 했다. 우선 말 많은 거 똑같다. 어른들에게도 거침없이 생각과 감정을 쏟아내는 것도 비슷하다. 낭만적이고, 공상가적인 모습도 매우 닮았다.(물론 닮은 점만큼이나 안 닮은 점도 많음) 그래서 초록 지붕 집으로 가는 장면을 볼 때 딸에게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딸의 좋아하는 길을 지켜주지 못했다. 이 동네로 이사 오기 전 우리가 살던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을 딸은 너무 좋아했다. 학교 가는 길이 하나도 아니고 두 개였는데, 매일 아침 어느 길로 갈지 정하는 것도 재미 중에 하나였다. 앤의 길처럼 목가적이고 낭만적인 풍경은 아니어도, 큰 나무들이 제법 있고, 철마다 피는 꽃나무도 있고, 야트막한 산도 들도 있어서 자연의 변화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길이었다.


학교에 너무 빨리 도착할까 봐 일부러 천천히 걷는다고 했다. 제 걸음으로 가면 15분이면 갈 길이지만 엉뚱한 짓을 하며 놀기도 하고 샛길로 빠지기도 해서 늘 30분쯤 일찍 집을 나서곤 했다. 가끔 친구가 집에 와서 같이 가기도 했지만 혼자 가는 게 더 좋다고 했다. 혼자 가면 보는 것도 더 많아지고, 더 많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학교를 좋아하니까 학교 가는 길도 좋을 수밖에 없다. 여행을 가기 전에 준비 과정에서 이미 설레고 좋은 것처럼, 앤이 가족이 생기고 살 집이 생긴다는 기대 때문에 가는 길이 더 즐거운 것처럼, 학교가 좋으니까 학교 가는 길도 즐겁다. 가면서 오늘은 학교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기대를 한다고 했다.


학교 가는 길이 좋으니까 학교가 더 좋아진 것도 있다. 가끔 학교 가는 길에 (상상 속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하면 학교를 가는 게 아니라 학교 가는 길을 가기 위해서 학교를 가는 거 같기도 했다. 나무와 꽃과 새와 갖가지 모양의 구름, 하다못해 전봇대와 발에 차이는 돌멩이들도 자기한테 말을 걸고 가끔은 한판 붙자고 덤비기도 해서 나뭇가지를 주워 들고 칼싸움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앤의 서정성과 달리 딸의 공상에는 괴물, 마블 캐릭터, 좀비들이 출현한다) 괴물과 칼싸움하거나 마법을 걸기 좋은 나뭇가지를 발굴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라고 했다. 혼자 가는 것을 선호하는 이유는 여럿이 가면 부끄러워서 애초에 이런 짓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혼자일 때만 맘껏 자신이 구축한 판타지 세계로 들어가 1인 다역을 마음껏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학교뿐만 아니라 학교 가는 길까지도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목적지 그 자체보다 목적지까지 이르는 과정까지 즐거워야 삶이 더욱 풍요롭고 행복해질 수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이제는 학교를 걸어가지도 못하고 혼자서 가지도 못한다. 새집이 학교와 좀 떨어져 있어서 딸 학교 선생님이자 옆집 엄마가 출근할 때 그 차를 얻어 타고 학교에 간다. 나는 옆집 엄마의 바쁜 출근길에 혹시라도 민폐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 약속한 시간보다 10분 먼저 내보내고 문 앞에서 기다리게 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일찍 일어나야 하고 서둘러 밥을 먹고 이를 닦는 둥 마는 둥 하며 후다닥 나가게 된다. 오늘도 아이를 내쫓듯 학교에 보내고 나니 뒤늦게 미안함이 밀려온다. 사실 이것 때문에 집 짓는 걸 끝까지 반대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리되었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고, 이미 벌어진 일인데 어찌하랴. 그 대신 내년에 가게 될 중학교는 학교 가는 길이 즐거운 학교, 무엇보다 자기 발로 걸어서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학교로 보내야겠다고 벌써부터 다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