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된 마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처음엔 ‘(얘가) 왜 그랬지?’였다가, 나중엔 ‘(내가) 왜 이러지?’가 됐다. 처음엔 딸 생각하며 눈물이 났는데, 나중엔 우리 엄마 생각에 울었다. 다 끝난 일이었지만, 다시 시작이었다. 자식이 학교에서 사고를 치면 그렇게 된다.
화사한 봄날이었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딸의 친구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__혹시 얘기 들으셨어요? (대개 이런 시작은 좋지 않은 일의 시작일 때가 많다)
__무슨 얘기요? (최근에 학교가 재미있다는 말 말고는 특별히 안 좋은 이야기를 들은 게 없다)
__아, 아직 못 들으셨구나. 저희 아이랑 따님이랑 둘이 사고를 친 거 같아요.
__네? 무슨 일인데요? (우리 애가 그럴 리가 없는데... 막상 이런 일이 닥치니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 진다)
__둘이 놀면서 반 아이들을 인기 순으로 적은 게 있는데 그걸 학교에 가져가 문제가 되었나 봐요. 개학하고 바로 다음날 있었던 일이라는데 저도 지금 들었어요. 퇴근하면 아이랑 얘기해보려고 하는데 혹시 어떻게 이야기를 나누셨는지 여쭤보려고 전화한 거예요. (워낙에 예의 바르고 겸손한 엄마이지만 그날따라 목소리가 아주 땅바닥에 딱 붙은 듯 납작했다. 그렇다. 자식이 사고 치면 목소리가 바뀐다)
__아뇨, 저는 전혀 못 들었어요. (띠띠띠띠 띠리릭, 현관문 열리는 소리) 애가 지금 들어오는데 무슨 일인지 한번 물어보고, 전화드릴게요.
__혹시 학교에서 안 좋은 일 있었니? 혹시 엄마한테 말 못 한 이야기가 있나 해서...(엄마 다 알고 있어. 무슨 일인지 빨리 말해봐!로 들렸을 것이다. 아이의 눈동자가 정처 없이 떠돌다가 내 눈동자 안으로 들어왔다. 안 그래도 눈물이 많은 그 작은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__음, (한참 뜸 들이다가) 솔직하게 말할께. 지난주에 진달래(친구 가명)가 우리 집에 놀러 왔었잖아. 그때 같이 그림도 그리고, 게임도 하고 놀다가 반 애들 얘기가 나왔거든. 근데 어쩌다 보니 누군 인싸, 누군 중간, 어떤 애들은 잘 모름 이런 식으로 낙서를 했어. 그러곤 완전히 잊어버렸지. 개학하고 학교에서 종합장을 펼쳤는데 그 낙서가 있더라고. 너무 놀랐지. 누가 볼까 봐 얼른 찢어서 휴지통에 버리고 난 화장실에 갔다 왔어. 근데 그 종이가 칠판에 붙어 있는 거야. 너무 무서웠지. (아니, 가서 떼 버리지 그랬어...라고 중간에 끼어듦) 그때 선생님이 출근하셔서 종이를 함부로 떼어버릴 수 없었어. 칠판은 선생님 영역이잖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눈물이 나더라고. 내가 계속 울기만 하니까 선생님이 날 보건실로 보내고 ㅇㅇㅇ쌤을 불러오셨어.(개학 바로 다음날 벌어진 일이라 아이의 성향을 잘 몰라서 당황한 선생님이 5학년 때 선생님께 SOS 치심) ㅇㅇㅇ쌤이 괜찮다고, 누구나 잘못할 수 있다고, ㅇㅇㅇ쌤도 어릴 때 부모님 지갑에서 돈 훔쳤는데 아직 말씀 못 드렸다고 하시는 거야. 그때 속으로 선생님이 저런 말 해도 되나,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그 말이 나한텐 엄청 힘이 됐거든! (이때부터 울컥!) 내가 좀 진정되고 나니까 담임 선생님이 어떻게 된 일이며, 어떻게 처리하길 바라냐고 물어보셨어. 내가(우리가) 그때 왜 그런 짓을 했지, 하는 후회와 함께 너무 부끄럽고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만 했어. 선생님이 본 아이들이 많지 않은데 없던 일로 하길 바라냐고 물어보시길래 내가 아이들에게 직접 설명하고 사과해야겠다고 했어. 그리고 학생회장 자격이 없으니까 회장을 그만두겠다고 했어.(네가 무슨 시장이냐? 사퇴를 하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수업 시작하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서 애들한테 사실대로 말하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는데 친구들이 너무 잘 받아주더라고. 별일 아니라는 반응이었어. 아이들이 너무 고마웠지. 그렇게 끝난 일이야. 그래서 말 안 한 거야. 다시 생각하니까 너무 힘들어. 엄마, 미안해. 나 나가서 동네 한 바퀴만 돌고 올게.
(딸이 다니는 학교는 한 학년에 한 반 밖에 없는 작은 학교에서 5학년 반 아이들이 그대로 6학년 때도 같은 반이 된다)
아이가 나가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가 굳이 더 보탤 말은 없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이미 자기 선에서 잘 끝난 문제였다. 내가 모르고 지나갔더라면, 아이 스스로 마음이 잘 정리되었을 때 스스로 말할 수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 때문데 아이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다시 떠올려야 했다.
처음엔 학교에서 아이가 뭔가 문제를 일으켰다는 생각에 놀랐다. 그리고 그게 그런 류의 문제를 일으켰다는 생각에 부끄러웠다. 그로 인해 누군가 상처 받았을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이었다. 공부는 못해도 인성 문제는 없을 거라고 은연 중에 자신했던 나의 자만심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여기까지는 속은 시끄러울지언정 눈물까지 쏟을 일은 아니었다.
결국 나도 이기적인 엄마였다. 한 번 터진 눈물이 그치질 않아 보건실에서 2교시까지 있었다고 했다. 집에 오고 싶었지만 꾹 참고 사과하고,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다. 평소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는 딸이 2주가 다 되도록 나한테 한마디도 안(못) 하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얼마나 많이 힘들고 외로웠을까? 엄마란 작자가 딸의 안식처가 되어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눈물이 쏟아졌다.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에 나는 왜 울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과 함께 엄마로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하는 질문이 밀려왔다. 공부는 못해도 되지만 인성 문제는 절대 안 된다는 강박적 사고가 아이를 억압하고 있지 않나? 남에게 피해나 상처를 입히는 행동은 절대 안 된다는 도덕적 결벽증에 아이가 짓눌려 있는 것은 아닌가? 나와 아이를 동일시하고 있는 건 아닌가? 이제 13살 된 아이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고 기대하고 있진 않았나? 혹시 아이가 무결점으로 자라길 바라고 있진 않았나? 이 와중에 오래전 속 썩이던 나 때문에 참 많이도 울던 엄마 생각이 났다. 무슨 말썽을 부리고 사고를 쳐도 혼내기보다는 마냥 기다리고, 그것도 싫어서 밀쳐내면 저만치 떨어져 기다려주던 부모님 생각에 이르자 눈물이 그칠 줄을 몰랐다. 이래서 자식 키워봐야 부모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게 되는 건가.
__아니, 난 또 무슨 일이라고. 얘가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할 수 있는 거지. 왜 울고 그래. 그리고 집에서 둘이 놀다가 낙서한 거고, 그래서 버린 건데 남이 버린 종이를 굳이 꺼내서 칠판에 공공연하게 게시한 게 문제인 거 같은데.
와르르 무너져 내린 내 마음의 참사 현장에 먼저 달려와 나를 구한 건 남편이었다. 면죄부와 같은 말을 해준 남편 덕분에 나는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한 없이 무거운 마음 앞에 내놓는 한결 가벼운 진단, 한없이 확장해 나가는 나의 죄의식을 차단하는 남편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직도 한 글자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같이 사나 보다.
동네 한 바퀴 돌고 집에 돌아온 아이를 꼭 안아주면서 말했다.
__엄마는 네가 용기 내서 사과한 거 그거 높이 평가해. 그리고 네가 엄마한테 말 못 하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생각 때문에 눈물이 난 거야. 뭔가 문제가 있을 때, 잘못을 했을 때, 힘들 때 엄마한테 와서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어. 그런 엄마가 되고 싶어.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앞으로 별의별 일이 다 있을 것이다. 지난날 내가 사고 쳤던 거에 비하면 이건 우주 속에 떠다니는 먼지 수준으로 사소하고 가볍다. 이번 사건으로 보니 아이는 오히려 안심이다. 내가 문제다. 그나마 안심이 되는 건 내 곁엔 나보단 훨씬 가볍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남편이 있다는 사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자식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란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자식은 내가 잘한다고 잘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잘 못 한다고 잘못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언제든지 생길 수 있고,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중요하다. 어려울 때 옆에 있는 사람이 중요하다. 다행히도 딸에게는 선생님과 친구들이 있었고, 나에게는 그런 남편이 있었다. 그러면 된 거다.
*엄마 브런치 글 재밌어. 엄마 계속 써! 라며 늘 내 브런치를 가끔 보는 딸이 이 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면 삭제할 수도 있음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