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저장소 3 : 우측보행
왜 했는지 몰라. 결과는 늘 똑같은데.
세 명이 가위바위보를 했어. 또 내가 졌지. 벌칙으로 물에서 달리기를 했어. 얼마나 힘들던지 쓰러지고 말았어. 더 이상 달릴 수가 없었어. 하진이 무릎에 누워서 쉬고 있는데 내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다가왔어. 눈을 떠보니 귀신이었어. 그것도 다섯 명이나.
바로 앞에 선 두 명은 눈 아래가 시꺼먼 귀신이었어. 그냥 눈 아래가 푹 파여서 눈이 저 멀리, 아니 눈이 아예 없는 거 같았어. 그 뒤로 한 명은 꼬리가 아홉 개 달린 구미호였고, 맨 뒤에는 구렁이라고 해야 하나. 큰 뱀처럼 생긴 귀신이었어. 한 명은 생각도 안 나. 암튼 무시무시한 귀신들이 나를 둘러싸서 완전히 얼어버렸지.
갑자기 저 뒤에 있던 구렁이가 몸을 동그랗게 말더라고. 공벌레처럼 말이야. 그리곤 내가 누워있는 쪽으로 데굴데굴 굴러오더니 순식간에 내 배 위까지 올라왔어. 눈이 마주쳤어. 숨이 멎는 것 같았지. 하진아! 하진이가 사라졌어. 이제 꼼짝없이 나 혼자 죽는 것 같았지. 온몸이 굳어버렸지. 그냥 이렇게 돌이 된 거 같더라고.
쿵. 쿵. 쿵.
분명히 내 몸에서 나는 소리였어. 심장이 뛰기 시작했어. 소리가 얼마나 큰 지 온 세상을 다 흔들어댔지. 그러니까 내가 아직 죽진 않았다는 거잖아. 호랑이 굴에 잡혀가더라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남는다고 했지. 머리를 흔들고 몸을 움직여서 정신 차려보니 이건 꿈이더라고. 꿈이면 꿈을 깨면 되는 거잖아. 근데 이게 꿈인 줄 알면서도 너무 무서우니까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겠더라고.
다시 용기 내보자. 어디서 힘이 솟았는지 귀신 한 마리씩 떼어내고 밀어내고. 방문을 열고 뛰기 시작했어. 달리고 또 달렸지. 한참을 달리는데 뭔가 익숙하더라고. 내가 뛰고 있는 곳은 학교 복도였어. 내가 맨날 복도를 뛰어다니는데 모를 수가 없지. 근데 복도 끝이 안 보였어. 끝이 없는 감옥 같더라고. 귀신들이 쫓아오고 있었어. 도망가야 했어. 트로피, 왜 우리 학교 복도에 쫙 전시되어 있던 트로피 있잖아. 옛날에 무슨 대회 나가서 우승하고 그런 거. 그 뾰족한 트로피로 유리창을 깼어. 유리창으로 어떤 머리 긴 여자가 보이더라고. 그 여자가 내 쪽으로 걸어왔어. 쌤이었어. 윤희정 쌤. 넘 반가웠지. 쌤! 하고 소리치며 쌤에게 달려갔지. 쌤도 내쪽으로 다가오더라고. 쌤이 씩 웃으면서 내 손목을 꽉 잡았어. 웃고 있는데 어쩐지 무섭더라고. 쌤이 내 얼굴 가까이 다가와서 말했어.
그리고 잠이 깸(the end)
우리 땐 좌측통행이었는데, 언제 바뀐 거지? 딸 꿈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측통행으로 바뀐 것을 첨 알았다. 찾아보니 우측통행으로 바뀐지 10년째란다. 그렇다치고, 우측보행을 학교에서 얼마나 강조했으면 악몽을 꾸는 건가 궁금해서 교사 친구에게 물어보니 복도에서 뛰어다니다가 애들끼리 많이 부딪히고 크게 다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짝짓기 시즌의 사슴이 전후좌우 안 보고 냅다 달려서 충돌사고가 많은 것처럼 아이들도 그렇게 날뛰는구나, 싶었다. 딸 아이는 운동화 끈이 없는 슬립온 스타일 운동화만 고집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쉬는 시간에 최대한 빨리 운동장으로 (튀어) 나가기 위해서란다. 신발 신을 때 신발끈 풀고 묶고 이 시간도 아까운 거다. 그런 딸이 학교도 아니고 집에만 갇혀 지내니 애 속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