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다른 바쁨에 대하여
봄 하면 떠오르는 아름답고 예쁜 말들이 많지만 나에게 봄은 바쁨이다. 바쁘다는 것은 일이 많거나 또는 서둘러서 해야 할 일로 딴 겨를이 없다는 건데 나에겐 봄이 정말 그렇다. 할 일이 지천에 널려 있고, 볼 것도 먹을 것도 많고, 이 모든 게 때를 놓치면 못하는 일이라 서둘러야 한다. 그러다 보니 정말 딴 겨를이 없다.
나의 봄은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봄보다 일찍 온다. 설 지나고 겨울 눈이 녹으면서 땅이 폭신해지면 겨울 냉이를 캘 수 있는데, 그때부터 난 봄이 왔음을 느낀다. 올해는 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께까지 꼬박 한 달간 냉이를 캤다. 냉이만 캔 것이 아니라 해의 변화, 바람의 방향, 온도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꼈다.
냉이의 시간이 지나면 꽃의 시간이 온다. 화려한 봄꽃이 많아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들에서는 냉이꽃과 꽃다지가 피기 시작하고, 산에는 진달래를 시작으로 개나리, 매화, 목련, 산수유, 그리고 대망의 벚꽃이 경쟁적으로 피어난다. 우리 동네에서는 복사꽃이라고 불리는 복숭아꽃, 앵두꽃을 볼 수 있고, 우리 집에는 자두꽃과 꽃잔디가 피었다. 꽃이 피었는데, 어찌 그냥 지나갈까. 진달래꽃을 한 아름 따다가 화전을 부쳐 먹어야 봄꽃의 시간이 완성된다.
꽃의 시간이 가면 쑥과 달래의 시간이 온다. 단군신화에서 곰을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쑥과 마늘'은 ‘쑥과 달래'였다는 설이 있다. 마늘의 원산지는 이집트 또는 중동 쪽이고, 달래는 기원전부터 한반도에서 자생하고 있었다고 하니 꽤 설득력이 있기도 하지만, 단군신화는 고려 때 만들어진 것이니 진실을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마늘은 한창 뒤고, 쑥과 마늘이 나는 때가 비슷하니 나는 달래일 가능성에 100원을 걸어본다. 나는 룰루랄라 재미 삼아 돌아다니면서 쑥과 달래를 캐고 맛있어서 먹지만, 그 옛날 사람들은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절박한 것이었을 게다. 그러고 보니 우리 민족의 정체성은 태초부터 헝그리 정신인 건가ㅎㅎ
곁다리로 고들빼기, 씀바귀, 돌나물, 망초대, 제비꽃을 뜯으러 다니고, 저녁엔 조물조물 무쳐 먹고, 주말엔 오다가도 집에 오는 친구들과 나눠 먹느라 바쁘다, 바빠! 어떨땐 뉴스 볼 시간도 없다(그래서 좋다). 회사에서 바쁠 땐 죽을 맛이었지만, 봄의 시간 속에 사느라, 좋아하는 거 하느라 바쁘니까 바빠도 살 맛 난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쁜 척을 해댔으면 사람들이 ‘많이 바쁘죠?’하면서 말을 걸었었다. 요즘은 그렇게 묻는 사람이 일절 없지만 사실 나 많이 바쁘다. 근데 좀 다른 일로, 다르게 바쁘다. 바빠서 딴 일에 신경 쓸 겨를도, 괜히 엉뚱한 일에 감정 소비할 시간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일, 다행히 매우 생산적인 일에 내 시간과 감정을 온전히 쓰며 한동안 바쁘게 살련다. 그럼 전 이만 바빠서...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