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대와 무한소
냉이에는 열정을 보여도 쑥에는 좀 냉정한 편이다. 봄이니까 예의 상 쑥국 한번, 쑥전 한번 부쳐 먹긴 하지만 한 번이면 끝이다. 냉이는 동네 밖으로 원정까지 가면서 캐지만, 지천에 널린 쑥은 본체만체한다.
손맛이라는 게 있다. 낚시꾼이 고기를 낚는 손맛을 보고 싶어 하는 것처럼 채집꾼도 자꾸 뭔가 캐고 싶다. 손이 근질근질하다. 그 말을 엄마에게 했더니,
“그럼 쑥 좀 캐서 보내줄 수 있을까? 너 괜히 힘들게 뜯으러 다닐까 봐 말 못 했는데...”
아니 어머니, 말투가 그게 뭡니까? 딸한테 뭐가 그렇게 조심스럽습니까? 딸한테 그런 부탁도 못합니까? 그리고 뭐가 힘듭니까? 지천에 쑥이 널려 있고, 마침 딸이 나물 캐는 거 좋아하고, 마침 퇴사하고 시간도 많은 거 잘 알지 않습니까? 맨날 나물 캐서 동네방네 나눠 먹는 거 잘 알면서 그 말을 꺼내는 게 그리 어렵습니까? 근데 쑥은 뭐할 겁니까?!!!
“네 아빠가 쑥 버무리를 그렇게 좋아하잖니. 매년 쑥 한 관씩 사고 방앗간에서 쌀 빻아서 쑥 버무리 한 솥 해서 냉동실에 쟁여두고 일 년 내내 먹잖니.”
산으로 둘러싸인 지방 소도시 사는 부모님에게 쑥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은 1도 안 해봤다. 그동안에는 산나물 캐서 파는 동네 할머니에게 매년 사서 했는데 요즘 그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아직 쑥을 못 사고 있다고 했다.
참 기가 막혔다. 난 아빠가 쑥버무리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고, 매년 쑥을 사들이는 것도 이번에 첨 알았다. 엄마도 참 너무 하지.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쑥 좀 캐서 보내달라는 말을 왜 못 하는 건가. 클 때 그렇게 속을 썩이고, 지금도 이렇다 할 효도는커녕 그냥 내 마음대로 살고 있는데 쑥 좀 캐서 그동안 못했던 효도 좀 하게 해 주면 안 되는 건가? 내가 나중에 다른 건 못해도 우리 부모님 좋아하는 쑥은 해다 드렸지, 하고 봄이면 추억할 수 있게 해 주면 안 되는 건가? 어차피 돈 많이 들고 내가 싫어하는 건 해달라고 떼써도 못 해준다고!!!
“너무 많이 캐려고 애쓰지는 마. 조금만 보내면 돼. 봄이라도 바람이 차니 옷 든든하게 입고, 봄볕에 얼굴 그슬릴라 모자 쓰고, 장갑 끼고, 장화 신고 나가고 풀숲에 손 넣지 말고 산에 깊이 들어가지 말고(뱀 나올라...). 물 가지고 다니면서 마시면서 놀면서 쉬면서 그냥 조금만, 조금만 캐서 보내면 돼. 안 보내도 되고...”
말 한마디 어렵게 꺼내놓고 근심 걱정을 끝도 없이 늘어놓더니 극기야는 쑥 좀 보내달라는 말을 후회하고, 거둬들이려고 하는 게 아닌가? 참나, 이 부모들 문제 있다. 당신들은 자식한테 무한대이면서 자식에겐 무한소만큼도 부담을 안 주려고 한다. 당신들은 철마다 때마다 있는 거 없는 거 바리바리 싸서 보내주면서 나는 주변에 널리고 널린 쑥 좀 캐서 보내달라 말을 못 한다. 됐고! 난 오늘부터 쑥 캐러 간다. 쑥 먹고 사람도 됐다는데, 난 쑥 캐면서 효녀가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