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사람에게 편지 쓰기
무슨 무슨 날이 많아서 누군가에게 감사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5월에 학교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누가 누가 더 감사한가, 고마운 사람(!)에게 편지 쓰기 대회(씩이나)를 하는데, 딸은 ‘사람’이 아닌 ‘개’에게 썼다.(이로써 부모, 선생님, 친구 등등 사람들은 의문의 1패)
편지의 수신인은 우리 집 개 여름이지만, 진짜 이 편지의 수신인은 대회 관계자가 될 것이다. 그런 점을 고려하여 빨간 펜을 들고 개—> 반려견으로, 주인—> 가족으로 고치는 것이 어떨까 1초 정도 고민했지만, 1초 만에 그러지 않기로 했다. (등교 직전 이 편지를 봤으니 어차피 그럴 시간도 없었고, 내가 빨간 펜을 든다고 고분고분 따라주실 따님도 아니시다) 어차피 기획 취지를 빗나가면서(분명히 감사한 사람에게 편지 쓰기였음!!!), 입상도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모르긴 몰라도 고마운 사람들의 감동적인 스토리는 한 트럭도 넘게 쏟아질 것이다.
입상 욕심을 버리고 나니, 감상의 태도는 훨씬 느긋하고 너그러워졌다. 우리 집 반려견보다는 우리 집 개가 더없이 정겹고, 너의 주인이라는 말조차도 주종의 권력관계가 아닌 애정의 과시처럼 보여서 귀엽기 그지없다. (연애할 때 ‘넌 내 거!’ 뭐 이런 말들 남발할 때 느낌이랄까~ㅋ) 굳이 반려견이라고 부르지 않더라도 딸에게 여름이는 반려동물이다. 여름이와 일상을 공유하고, 희로애락을 나누고 있다. 얼마나 좋아하고 사랑하는지 충분히 알겠다. 이 와중에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살아있으라는 말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웃음이 난다. 여름이 현재 나이 8년에 딸 고등학교 졸업까지 6년을 더하면 14년은 아마도 진돗개의 평균 수명의 중간값을 계산하여 특정한 것일 터. 이미 두 번의 반려동물의 죽음을 경험한 딸은 여름이의 죽음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이 편지를 읽다 보니 내가 여름이에게 감사할 것이 많다. 특히 우리 부부가 싸울 때 외로운 딸의 곁에 있어 준 것도 고맙고, 말 많은 우리 딸 이야기를 들어준 것만으로 너무나 고맙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수다쟁이 우리 딸 이야기를 10년 가까이 들었으니 여름이도 글까지는 못 읽어도 말귀는 알아듣을 것 같다. 일단 나가서 여름이와 동네 한 바퀴 산책을 하고, 뒷동산에 올라 특식을 진상토록 하겠다.
>>짜잔, 특식 먹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