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권위주의
얼마 전 딸아이 학교에서 6학년과 3학년이 크게 싸운 일이 있었다. 3학년 여자 아이가 6학년 남자아이가 지나갈 때 뭐라고 한 마디 했는데, 이 말에 화가 난 6학년이 그 말을 따져 묻는 과정에서 같이 있던 아이들까지 함께 논쟁이 붙었고, 이 소문을 듣고 달려온 아이들까지 각 학년 그룹에 가세하면서 꽤 큰 싸움으로 번졌다. 결국 각 반의 선생님들이 중재하여 싸움이 끝났다(고 한다).
딸은 싸움의 현장에 있지 않았다. 직접 보고 들은 게 아니라 사건이 종료된 후 나중에 친구에게 전해 들었기 때문에 착오가 있을 수 있어 세부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겠다. 이 싸움에서 우리가 주목한 것은 ‘버릇없이 군다’, ‘대든다’는 말이다. 6학년 아이들이 분노를 표출하는 과정에서 ‘3학년이 6학년에게 버릇없이 군다', ‘3학년이 6학년에게 대든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딸은 공감보다는 반감이 들었다고 했다. 잘못한 것을 따지면 될 일이지, 나이차를 강조할 일은 아닌 것 같다고 아이들에게 말했다가 안 그래도 잔뜩 화난 아이들에게 원성을 샀다고 했다. 얼핏 '도대체 넌 누구 편이냐'는 말도 들은 것 같고. 하긴 싸움의 중심에 있었던 아이들은 분노의 감정에 휩싸여 있는데 공감은 못 해줄 망정, 지적질을 하니 친구들 입장에서는 재수 없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딸이 욕 먹을 걸 알면서도 집단주의에 빠지지 않은 걸 높이 평가한다)
사전적 의미는 '반항하고 맞서서 달려든다'는 말이지만 보통 나이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에게 반항하거나 맞설 때 많이 쓰인다. 비슷한 말로 '말대꾸한다'도 있다. 모두 나이 권위주의를 드러내는 말이다. 이번에 갑자기 소환된 '장유유서'와 같은 유교적관습은 표면적으로는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삶에 여전히 뿌리 깊이 박혀 있다. 딸아이 학교에서 벌어진 싸움에서처럼 초등학생의 싸움 전술에도 나이에 의한 위계질서가 등장한다.
장유유서에 대한 딸과 나의 생각은 같다. 하지만 반응이 다르다. 무려 X세대인 나는 '장유유서'라는 유교 문화에 대해 속으로 심히 반감을 가지고 있지만, 겉으로는 그냥 순응하는 척 살아왔다. 장유유서의 질서를 강요 받는 불편한 상황에서도 문제제기보다는 어물쩍 넘어가며 살아왔다. 딸은 확실히 다른 것 같다. 그런 문화에 동의도 못하겠고, 그냥 넘어가지도 못한다. 어른을 만났을 때 먼저 인사하라고 하면 '왜 아이들에게만 어른한테 인사하라고 하냐,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먼저 인사하면 안 되냐'면서 의문을 제기한다. 나는 불합리한 것을 알면서도 대체로 침묵했거나 뒷담화로 떠들고 지나갔던 것에 대해서 딸은 앞담화한다. 그런 딸을 보면 앞으로 고생길이 훤하기도 하고 희망적이기도 하다. 부모된 입장에서 고생길 가라고 격려는 못할지언정 말리지는 못 하겠다. 딸의 말이 틀린 게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