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의 삶과 죽음 사이에서
마음이 너덜너덜했다. 집 짓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우리도 집을 지으면서 마음고생을 좀 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사 오고 마음 좀 추스르던 때 함께 오래 일했던 분의 비극적 죽음을 접하게 되었다. 곧 이어 시작된 장마는 길고 길었다. 딱 내 마음이었다. 빗물도, 눈물도 주룩주룩 흘러내릴 때마다 말없이 나를 토닥거린 것은 나무였다.
우리 식탁 앞에는 통창이 하나 있고, 그 창 안으로 뒷집 할머니의 빨간 지붕 집과 텃밭, 그 뒤로 뒷산의 키 큰 나무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그때 내 마음에 쏙 들어온 것은 뒷집 할머니 마당에 키 작은 나무였다.
우리가 이사 온 것이 작년 6월이었다. 그땐 잎만 무성했는데 그래도 예뻤다. 6월 말 즈음에 꽃이 피기 시작하면서 이름(목백일홍, 배롱나무)을 알게 되었는데 신기한 것은 이름처럼 꼭 100일 동안 꽃이 피어있었다. 할머니의 나무는 할머니 집에서 보는 것보다 우리 집에서 더 예뻤다. 할머니도 우리 집에 와서 보시고는 인정했다. 내 나름대로의 관람료라고 생각하고, 나는 할머니에게 부지런히 떡이나 과일을 나르고, 보름날엔 찰밥을, 봄에는 쑥버무리를 해드렸다. 그리고 집에 오는 손님들에게 나무 자랑을 많이 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나무를 심고 싶어서 할머니 것과 똑같은 배롱나무를 친구에게 선물 받아 심었다.
그리고 가을, 긴긴 겨울을 지나고, 드디어 봄이 왔다. 꽃부터 피는 나무들이 먼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우리 집 자두나무에도 꽃이 피고, 새순도 올라왔다. 순서는 생각나지 않지만 우리 집 앵두나무, 대추나무, 감나무에도 잎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배롱나무는 아직이었다. 배롱나무가 원래 남쪽에서 주로 자라는 수종인 데다 지난겨울 워낙 추웠어서 혹시 죽은 건가 걱정을 했다. 하지만 우리 것만 그런 게 아니라 10년 된 할머니의 배롱나무도 아직이었기에 우리는 때가 안된 줄만 알았다.
아니었다. 죽었다고 했다. 할머니가 배롱나무가 죽었다면서, 나뭇가지를 꺾어 보여주셨다. (생가지는 잘 꺾이지 않지만 죽어서 마른 가지는 가볍게 툭, 하고 부러진다) 하마 벌써 새순이 났어도 났어야 하는 거라고, 이런 적이 10년 만에 처음이라고 하셨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10년 된 할머니 나무가 죽었다면 우리 나무는 말할 것도 없이 죽은 거였다. 우리 배롱 나무가 죽은 것도 속상하지만, 할머니의 나무가 죽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말할 수 없이 힘들 때, 말없이 위로를 해주던 나무였다. 쉽게 보낼 수가 없어서 죽음을 선고받고 한달이 흐른 지금도, 혹시? 하며 부질없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생명을 받아들일 때는 죽음도 같이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동물도 그렇고, 나무도 마찬가지다. 언제든 죽을 수 있다. 알지만, 죽음은 언제나 어렵다. 가족의 죽음, 반려동물의 죽음도 경험했기에 나무의 죽음이 무슨 대수일까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쏟아부은 애정의 크기만큼, 함께 한 시간의 길이만큼, 의미를 부여했던 그 깊이만큼 죽음은 힘들다. 저렇게 죽어서 나를 쳐다보며 말 없이 서 있는 나무를 나는 어떻게 보내야 할까? 나는 아직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