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엇이든 씁니다 Jan 13. 2020

빈집털이범이 되었습니다

우리 땅을 처음 밟아보다

집을 짓기로 해놓고서도 한참동안 땅을 보러 가지 않았다. 차로 10분이면 가는 가까운 거리였다. 땅을 많이 보러 다닌 남편이 어련히 알아서 했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고, 같이 집을 짓기로 한 이웃 중에 건축하는 사람도 있었기에 크로스 체크된 좋은 땅이겠거니 했다. 사실 투자 목적으로 산 것도 아니고, 실거주 목적이어서 비슷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대강 어디쯤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 인근에 꽤 이름 있는 밥집과 브런치 카페가 있어서 밥 먹으러, 브런치 먹으러 드나들던 동네이기도 했다. 부동산 중개비 잔금 치르는 날, 바쁜 남편을 대신하여 가는 김에 땅에 가보게 되었다.


도대체 이 땅이 뭐가 좋다는 거야?"


첫인상이 별로였다. 오랜만에 가게 된 그 동네는 내 기억 속의 그것과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우선 가는 길에 서울문산 간 고속도로 공사가 한참 진행 중이어서 큰 차가 오고 가고 어수선했다. 꽤 규모 있는 카페도 들어서 있었다. 동네 어귀로 들어서자 새로 지은 집들도 꽤 들어서 있었다. 꽤 큰 필지에 넓게 자리한 한옥도 마무리 공사로 분주했다. 한 마디로 동네가 어수선했다.


차가 멈추어 섰다. 설마 여기? 허름한 구옥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 뒤로 얼마나 된 건지 꽤 웅장한 밤나무 두 그루가 밤꽃을 가득 피운 채 집터에 드리워져 있었다. 몇 마리의 고양이들이 빈집을 드나드는 것이 보였다. 사람이 살지 않은지 꽤 된 것 같은 구옥은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갑자기 뭐가 튀어나와도 놀라지 않을 것 같은 으스스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왜 이리 작아 보이는지, 집 세 채는커녕 한 채도 겨우 들어갈 것 같았다. 풀이 무성한 탓인지 땅의 생김과 규모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풀이 높아서 주위의 집들에 비해 푹 꺼져 보였다. 심란했다. 혼자 샀다면 계약금을 포기하고 안 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같이 산 땅이었다. 되돌릴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이 살았을까?"



풀을 헤치고, 빈집으로 들어가 보았다. 마당에는 작은 소나무가 있었고, 집안에는 옛 주인이 버리고 간 가재도구들이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었다. 부엌 앞에는 우물이 있었다. 안 그래도 전설의 고향에 나올 법한 분위기인데 우물까지 있으니 납량특집이 따로 없었다. 그 와중에 여기저기 구석구석 알뜰살뜰하게 뜯어보았다. 여기엔 어떤 사람이 살았을까?


탐정이라도 된 것처럼 특별한 단서를 찾아보고자 했지만 그런 건 없었다. 뒤돌아 나가려는데 뜻밖의 물건을 발견했다. 이집트에서 기념품으로 사 왔을 법한 제법 큰 파피루스 종이그림 액자였다. 안방 방문 위에 비스듬히 매달려 있었다. 얼마나 단단히 묶어두었는지 끌어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백만 년 정도 쌓인 것 같은 먼지를 털어냈더니 꽤 그럴듯한 액자가 나왔다. 그 먼지 쌓인 액자를 차 트렁크에 싣고 돌아왔다.


이 액자 때문에 이 땅에 대한 애정이 쪼끔 생겼다. 뭔가 재미난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 것만 같았다. 할머니가 혼자 살았다고 들었는데, 할머니가 직접 이집트 여행에 가서 사 오진 않았을 것 같다. 아닌가? 피라미드 보러 가셨나? 할머니 자식 중 누군가 이집트에 여행? 출장 갔다 오면서 이 액자를 사 왔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그런데 왜 이 액자를 가져가지 않았을까? 안방에 단단히 묶어둔 것을 보면 소중한 액자인 거 같은데... 혹시 할머니가 먼저 돌아가시고 집을 팔면서 그냥 버리고 간 것일까? 할머니와 이 액자에는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을까?


구옥 먼지구뎅이에서 발견한 이집트 파피루스 그림 액자


2019년 5월 마지막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