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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Jan 14. 2020

이사 가기 싫어!

너의 고향은?

난 이사 가기 싫어!"


딸아이가 자긴 지금 동네, 이 학교가 좋다며 이사 가기 싫다고 했다.


집을 짓고 이사 가는 일이 과연 어른들만의 일일까? 어쩌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건 딸아이 인지도 모른다. 딸아이를 엄연히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한다고 말만 번지르하게 했을 뿐,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딸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했다.


난 우리 동네, 우리 학교가 좋아."


딸 아인 지금 살고 있는 이 동네가 좋다고 했다. 딸아이 막 4살 되던 때 이사 와서 8년을 살았으니 아이의 유년을 보낸 제1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이 동네로 이사 오기로 했을 때 고려했던 딱 한 가지는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놀 권리가 보장된 환경이었다. 야트막한 산과 들과 논은 어렸을 때 내가 살던 곳과도 비슷했다. 그때 행복한 기억이 있다보니 아이에게도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지난 8년 동안 딸아이는 산으로 들로 마음껏 뛰어놀며 바람의 힘으로 건강하게 지랐다. 봄이 오면 밭에서 냉이와 쑥을 캐고 여름엔 산으로 다니며 오디와 산딸기를 따먹었다. 가을엔 밤, 도토리 주으러 다니고 겨울에 눈이 오면 비탈길에서 눈썰매 타며 놀았던 곳이니 정이 흠뻑 들었을 것이다.



전철역에 내리면 논이 펼쳐져 있고, 어린이집 주위로 언제든지 나들이를 갈 수 있는 바람계곡, 나무기차, 네모 무덤가 등이 있고, 학교 뒷길은 바로 야트막한 영주산으로 이어진다. 통학로만 다섯 갈래인데 오늘은 어느 길로 학교에 갈까 아침마다 고민 아닌 고민을 한다. 최근에는 동네 인근에 두루미와 청둥오리가 노니는 습지공원이 생겨서 주말마다 반려견 여름이와 함께 산책을 간다. 최근에 GTX 착공이 되면서 개발제한이 풀렸는지 빌라가 들어서고 차도 많았졌지만 아직 아이들이 뛰어놀기에 이만한 곳이 없지 싶다.

 

영주산에 오르고 있는 아이들


딸아이는 학교와 친구들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무조건 이 학교를 졸업하고 싶다고 했다. 학교를 이렇게 좋아하다니 고마운 일이다. 이사 가도 이 학교를 계속 다니고 졸업하게 될 거라고 안심을 시켰다. 물론 걸어 다닐 거리는 아니어서 매일 라이드를 해야 한다. 반대할 때 나는 매일 라이드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제 다 커서 혼자 다닐 수 있게 됐는데 다시 라이드 하는 인생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같이 3호집 엄마가 아이가 다니는 학교 선생님이어서 출퇴근길에 아이들을 태워 다니겠다고 했다.


딸아이는 차 타고 다니는 것도 싫다고 했다.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가는 시간이 제일 행복한 시간 중 하나라고 했다. 10분 남짓한 짧은 시간인데, 그 시간에 구름도 보고 길가의 나무와 꽃들에 말도 걸면서 이런저런 상상하는 게 너무 재밌다고 했다. 가끔 아무도 안 볼 때 혼자 일인다역의 역할극도 한다고 한다. 딸아이가 그 시간을 얼마나 좋아하는 줄 알기에 미안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 동네에서 8년 동안 아이 키우면서 정말 잘 살았다. 이웃들의 도움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워낙 교통이 좋아서 서울로 출퇴근할 때도 큰 불편 없이 정말 잘 다녔다. GTX 때문에 곧 개발의 광풍에 휩싸이게 될지도 모른다. 개인적인 바람은 우리 아이 유년시절 추억이 있는 이 곳이 너무 많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기 이 자리에서 꿋꿋이 잘 버텨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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