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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Jan 15. 2020

헌집줄게 새집줄래?

철거와 첫번째 위기

역시 전 현장 체질인가 봐요. 우리 땅에 장비 들어오니까 흥분되네요.
살아있는 느낌이 들어요."


2호 집 아빠이자 현장소장을 맡게 될 B가 카톡으로 아침 일찍 철거 소식을 알려왔다. 구옥과 풀이 무성한 우리 땅에 포클레인이라는 첫 장비가 투입된 것이다.


새 집을 지으려면 당연히 구옥을 허물어야 한다. 좀 멋있게 표현하면 '창조를 위한 파괴'랄까. 하지만 누군가 오랫동안 살았던 집을 우리가 부순다고 생각하니까 뭔가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구옥에서 득템 한 이집트 파피루스 액자 때문일까? 철거하면서 마당에 있던 소나무를 터의 가장자리로 옮겨 심었다.(결국 나중에 죽고 말았다) 마당에 있던 우물도 일단 살려두기로 했다. (나는 없애자고 했지만 B가 우물을 살려 두었다) 폐기물 더미에서 돌 절구통이 발견되었다.


구옥에서 발견된 절구통(어디 가 있으려나?)


우리 땅의 모습이 시원하게 드러났다. 땅의 전체 모습을 처음 보게 된 것이다. 땅을 싹 정리하고 나니 꽤 넓어 보였다. 물론 집 짓다 보면 다시 좁아질 것이다. 땅의 완만한 경사도 드러났다.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얕은 경사가 형성되어 있었고, 뒤로는 과수원 부지가 야트막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이 땅에 어떤 모양이 집이 들어서게 될까?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게 될까?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구옥 철거 후 정리된 땅의 모양(2019.6.17)


철거하고 폐기물까지 완전히 처리하는데 꼬박 3일 걸렸다. 그리고 생각보다 비용도 많이 들었다. 철거를 끝내고 세 집이 모여 술 한잔을 했다. 그리고 바로 그날 첫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나는 문제의 그 자리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른다. 카톡 소리에 한밤 중에 깼는데 우리 셋집의 카톡방을 보니 술자리에서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 같다. 보자마자 머리가 지끈 아팠다. 지금부터 삐그덕거려서 계속 할 수 있을까, 걱정으로 밤을 꼬박 새웠다.



앞으로 닥칠 일이 두려웠다. 같이 집을 짓는다는 것, 특히 아는 사람이 집을 짓는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앞서 지은 사람들의 어려움을 듣고 보기도 했고, 아는 사람 중에는 뜯어말리는 사람도 있었다. 어찌 보면 필연적인 갈등이고 예견된 충돌이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 서로 편하게 이야기하다 보면 실수할 수 있고, 감정이 상할 수 있다. 나도 친한 친구와 같이 살아봐서 알지만, 서로 배려한답시고 참다 보면 오히려 서운함이 쌓이고, 오해를 하기도 한다. 나는 이런 갈등에 익숙하지가 않다. 혹자는 나를 평화주의자라고도 했지만, 나는 갈등 회피자에 가까웠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남에게 싫은 소리 하지 말라, 먼저 양보하고 잘 지내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온 탓에 갈등을 회피한다. 게다가 내가 간절히 원해서 집을 짓기 시작한 것도 아니다 보니 이런 류의 갈등과 긴장에 매우 취약한 상태였다. 그러나 누굴 탓하겠나. 내 발로 걸어 들어온 것을. 집을 지으면서 몇 번의 위기가 분명히 올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위기가 없으면 좋겠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그럴 수가 없다는 것쯤은 경험으로 안다. 하지만 집을 짓기도 전에, 겨우 철거작업 하나를 마치고 이런 일이 생기니 난감했다. 자신이 없었다. 다 되돌리고 싶었다.


다음날 아침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대강 어떤 상황이었는지 짐작이 됐다. 서로 걱정하는 마음에서 편하게 말하다 보니 감정이 상하게 된 것이다. 주말에 우리 집에서 다시 모였다. 마음속으로는 여기에서 멈추자고 하고 싶었다. 땅을 다시 되팔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서로 사과하고, 앞으로 재발방지를 위해 각자 대안을 제시하면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어느 글에서 봤다. 그동안 과학계에서는 새들이 집단적으로 날아갈 때 서로 부딪히지 않게 거리와 각도를 유지하는 정교한 프로그램이 작동한다고 믿어왔다고 한다. 그런데 드론으로 찍어보니 서로 엄청 부딪히면서 날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같이 날아가려면 부딪히면서 날 수밖에 없다.


이제 내 성격을, 지금껏 살아왔던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헌 집을 갈아엎듯 헌 사고방식도 갈아엎고 싶었다. 이미 새로운 세계, 지금껏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세계에 들어온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동안 갈등은 없는 게 좋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이제 생각을 바꿨다. 갈등은 없을 수 없고, 어떻게 해결하는가가 중요하다. 이렇게 생각하기까지 45년이 걸렸다.


땅의 레벨을 표시한 그림, 0을 기준점으로 했을때 레벨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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