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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Jan 16. 2020

어떤 대물림

여러 번 지은 자와 한번도 짓지 않은 자

남편이 왜 이렇게 집을 짓고 싶어 할까, 궁금했다. 남편에게 물어보면, 내 땅에 나무 심고, 꽃 심고, 반려동물 마당에 키우고, 마당에서 불 피우고 싶어서 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더 거슬러 올라가 근본적으로 시부모님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여러 번 집을 지은 시부모님


내 관심사가 아니어서 자세히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대충 듣기로 시부모님은 집을 여러 번 짓고 살다가 파시고 이사 가셨다. 남들은 평생 한 번도 하기 힘든 집 짓기를 여러 번 하신 거다. 들어보면 딱히 부동산 투자의 성격은 아니었던 것 같고, 그냥 재미있어서? 여러 번 하셨던 것 같다.


처음 내가 인사하러 갔을 때도 은퇴 후 사실 새 집을 짓고 계셨다. 그것을 보고 자란 남편에게 집 짓기는 별 게 아니다. 집을 지으면서 전전긍긍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태평하다. 집을 지을까 말까 고민할 때 내가 물었다. 기껏 집 지어 살다가 그 집에서 살기 싫으면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그럼 팔고 떠나면 된다고 했다. 남편에게 집은 짓고 팔 수도 있는 그런 것이다.


한 번도 집을 지어본 적 없는 내 부모님


하지만 나는 정반대였다. 내 부모님은 시부모님과 정반대다. 우리는 한 자리에서 나고 자랐다. 오죽하면 우리 형제들의 소원이 이사 한 번 가보는 거였다. 살면서 딱 한 번 이사를 가긴 갔다. 하지만 우리의 적극적인 의지가 아니라 살던 자리가 재개발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이사 간 것이다. 그마저도 어디 다른 데로 이사 간 것이 아니라 그때 옛날 살던 집을 허물고 들어선 아파트로 이사 갔다. 집은 바뀌었지만, 집터와 동네는 바뀌지 않았다. 지금도 집에 가면 같은 이웃과 같은 풍경을 만난다.


부모님은 집에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것이 투자 목적이던 실거주 목적이던 마찬가지다. 집은 비바람 피하고, 잠 편히 잘 수 있으면 된다고 늘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큰 집, 큰 차에 집착하는 것을 늘 못마땅해하셨다. 돈에 대해서도 철칙이 있었는데, 빚은 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칠십 평생 사시면서 가족의 돈이던 은행 돈이던 빚을 낸 적이 없다. 하다 못해 신용카드도 쓰지 않는다. 부모님은 돈, 차, 집이 삶의 목표가 되면 안 된다고 늘 말씀하셨다. 내가 가진 만큼, 있는 만큼만 살라고 하셨다.


부모님의 뒷모습


어릴 때는 부모님의 그런 철학과 신념이 너무나 싫었다. 빚도 자산이라는데 답답하고 무능력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내가 부모님처럼 살고 있었다. 나 역시 신용카드를 안 쓰고 체크카드만 쓴다. 지금까지 세 번 차를 샀는데, 모두 현금을 내고 샀다. 집 때문에 대출을 받으러 은행 문턱까지 간 적이 있는데, 결국 대출을 받지 않았다. 부모님처럼 돈이 없으면 안 쓰고, 있는 만큼 그 안에서만 살아왔다. 그런 나였기에 남편과 달리 집 짓기는 너무나 어렵고 두려운 일이었다.


우리는 다른 집안에서 자랐지만 지금까지 큰 충돌은 없었다. 남편이 나에게 맞춰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집을 짓고 싶다고 남편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정말 많이 싸웠다. 결정하기까지 한 달, 결정하고 나서 한 달 두 달 정도는 정말 병이 나도록 싸웠고, 그 사이에서 딸아이가 운 적도 많았다.


하지만 이번엔 내가 항복했다. 친정어머니가 한 번 해보라는 말에 전의를 상실했다. 그러게, 늘 내 방식이 맞는 건 아닐 텐데 난 늘 내 방식만 고집했다. 이제부터 남편이 원하는 대로 한 번 살아보라고 하고 싶었다. 사는 데 정답은 없으니까 이렇게도 살아보고 저렇게도 살아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늙은 건가? 딸의 말대로 갱년기가 온 것인가? 모르겠다. 일단 짓고 보자. 잘한 짓인지, 못한 짓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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