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인듯 내 것 아닌

#10. 할머니의 화분

by 무엇이든 씁니다

‘화분 무료 나눔’이 떴길래 냉큼 달려갔다. 집안은 이삿짐으로 매우 어수선했다. 거실에는 백발의 노부부가 나와 계셨는데 할아버지는 휠체어에 앉아 계셨고 할머니는거동이 불편하신 듯 했다. 공짜로 물건을 가지러 온 사람으로서 예의바르게 인사를 드렸지만 어쩐지 두 분 모두 달가워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검은 옷을 입은 중년의 여성 분이 거실 가득 쌓인 짐들과 노부부 사이에 길을 헤치며 나를 거실 끝쪽으로 안내했다.


“마음에 드는 거 골라가세요.”


한 눈에 딱 마음에 드는 건 없었다. 어딘가 부실해보인달까, 힘이 없어 보였다. 베란다에 화분이 꽉 찬 걸 보니 거실에 있는 화분들은 베란다 입성에 실패한 것들인 것 같았다. 난 화분이 많았지만 난에는 관심이 없어서 나머지 중에서 골라야 했다. 무료나눔인데 가게에 온 듯 고를 수는 없고, 그렇다고 아무거나 들고 가서 괜히 짐 만들 수는 없어서 빠르지만 신중하게 살피면서 말을 건넸다.


“이사 가시나 봐요?”

“아뇨. 이사 왔어요.”

“아, 정리를 못하고 오셨나보네요.”

“아뇨. 많이 정리하고 왔는데 이러네요.”



꽃은 졌고 잎도 시들하지만 회생이 가능해 보이는 제라늄을 제일 먼저 들어올렸다. 그닥 좋아하지는 않지만 화분이 예쁜 미니 알로에(맞나?), 그나마 멀쩡해보이는 선인장(검색해보니 오채각)을 골라서 미리 챙겨간 커다란 봉지에 주섬주섬 담고 있었다.


“이거 이거 내가 애지중지 잘 키우던 건데...요즘 내가 물을 잘 못줘서 이렇게 됐지만...”


할머니가 내 뒤통수에 대고 말씀을 시작하셨다. 몸을 돌려 엉거주춤 서 계시는 할머니를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아...제가 가져가서 잘 키워볼게요.”

“어디 살아요?”

“ㅇㅇ동이요.”

“ㅇㅇ동? 우리가 그쪽에 살다가 이사 왔어요.”

“아, 그러세요?”

“전원주택이에요?”

“뭐 전원주택까지는 아니고 작은 마당이 있어요.”

“아, 그럼 잘 됐네. 가져가서 잘 키워요!”


마당 있는 집으로 간다니 이제야 안심이 되신 걸까? 표정도, 목소리도 한결 부드러워진 느낌이었다. 들어가서 10분쯤 되려나, 그 짧은 시간, 몇 마디 말 속에서 어떤 정황들이 느껴졌다.


할머니는 본인이 애지중지 키우던 화분들(어쩌면 시간들)을 보내고 싶지 않다. 하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따님에게 살림 정리를 일임한 상황이고 따님의 말을 따라야 하는 형편이다. 집을 줄여서 오셨는지 어차피 베란다는 만원이고 휠체어도 다니려면 거실의 짐을 많이 비워야 한다. 따님은 엄마와 달리 자기는 화분 못 키운다고 하신다. 그렇게 떠나보내기로 한 화분들이 어쩌다 나에게 인연이 닿았고, 우리 집에 와 있다. 이 화분들을 볼때마다 할머니의 허탈한 표정과 마음이 자꾸 떠오른다.


보내기 싫지만 보내야 하는 마음

이왕 보내야 한다면 좋은 곳으로 보내고 싶은 마음

어디 가서든 잘 크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 할머니의 마음이 아직 듬뿍 담겨 있는 화분이라 그런가. 우리 집에 온 저 화분들이 내 것인듯 내 것 아닌 듯 하다. 어쩌면 우리 집에 맡겨진, 어쩌면 놀러온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