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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Jun 30. 2021

이 썩을 예술

오브제로서의 과일

집에 자두나무 한 그루가 있다. 나무를 심으면 그해에 바로 열매가 열리는 게 아니라고 해서 기대도 안 했는데 올봄에 꽃이 폈길래 혹시... 하면서 기다려보았지만, 끝내 자두는 열리지 않았다. 뭐 올해는 자두 구경을 못 하겠네, 했는데 자두가 떡하니 나타났다.   


우리가 매일 저녁 다니는 산책길에 자두나무와 살구나무가 있다. 식당 뒤켠에 주차장을 사이에 두고 옹색하게 끼어 있는데, 수령이 꽤 되어 보이는 걸 보면 식당이 생기기 전 옛 집터 경계에 있던 나무들이 아닐까 싶다. 집은 허물고 식당을 지었지만 경계 역할을 하는 나무는 남긴 것이다.


요즘 그 아래를 지나다 보면 자두와 살구가 꽤 많이 떨어져 있다. 완전히 익어서 자연히 떨어진 것도 있고, 미처 여물기도 전에 소나기를 맞아 떨어진 것도 있다. 낙과는 시장에서는 환영받지 못한다. 떨어지면서 상처를 입기도 하고, 완숙된 것은 터지고 물러져서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상품성을 벗어난 이들의 삶은 훨씬 자유롭다. 시장은커녕 나무 주인도 신경 쓰지 않는 작고 못 생긴 낙과들은 우리 같은 행인들에게 줍줍의 재미와 오브제로서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모습과 떨어져 생긴 상처마저도 오브제로서는 매력적이다.


오며가며 한 알 두 알 주워모은 낙과들을 식탁 센터에 쌓아두고 아침, 점심, 저녁으로 위, 아래, 옆모습까지 요리조리 뜯어본다. 저마다 크기와 모양과 색깔이 다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양과 색깔, 부피와 질감, 그리고 냄새도 변해간다. 반짝거림과 탱탱함이 줄어들면서 훨씬 완숙한 향을 내다가 이내 시들시들해지면서 결국 썩어간다. 이렇게 저렇게 다시점으로 관찰하고 있노라면 내가 무슨 폴 세잔도 아니고 뭐 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가 예술이 따로 있나, 이런 게 예술이지 그런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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