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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Jun 19. 2021

블루 안의 그대

방물장수 내 친구

첫눈에 반했다.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 중일 때 생협에서 같은 마을에 사는 조합원들끼리 마을모임이라는 걸 한다고 해서 바람 쐴 겸 나간 그 자리에서 그 친구를 만났다. 지금도 자주 쓰는 볼캡을 그날도 쓰고 있었고, 그 아래로 소멸 직전의 얼굴이 있었다.


모임이 끝나고 집에 가는 방향이 같은지 우리는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다가 횡단보도에서 멈춰 섰다. 그 친구는 내가 등에 업고 있는 딸이 몇 개월인지 물어봤고, 나도 그 친구의 유모차에 타고 있는 아들이 몇 개월인지 물어보는 사이 신호등이 바뀌어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그 친구는 자긴 방향이 저쪽이라며 먼저 가라고 손을 흔들어 엉거주춤 인사하고 헤어졌다. 이렇게 몇 마디 주고받은 게 우리 첫 만남의 전부인데도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았다. 강렬한 스파클까지는 아니지만 잔잔한 불꽃이 튀었고, 어렴풋이 우리가 어떤 관계로 발전할 것 같은 느낌이 왔다.


다음 달 마을모임에서 만나겠지, 다음을 기약했지만 내가 회사에 복귀하고 바빠지면서 한동안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 그래도 만날 사람은 언젠가 만난다고, 우연히 다른 모임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고, 그때서야 우리가 같은 나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연락처도 주고받으면서 급속도로 친해졌다.


이성에게도 첫눈에 반해  적이 별로 없는(아마  번쯤?) 내가 동성 친구에게  표현을 기꺼이  정도로 우리는 서로에게 진심이다. 나는 그저 마음으로만 진심인데,  친구는 나에게 물심양면이다. 누가 그러던데 마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물질이 가야 진짜라고,  친구가 정말 그렇다. 온갖 몸에 좋은 , 온갖 예쁜 , 온갖 맛있는 거는  친구로부터 온다.


 친구 덕에 된장차, 민들레차도 처음 마셔봤고, 프로폴리스, 캐나다 동종 , Neuropathy Rubbing Oil, 마시는 올리브 오일 같은 신기한 것들이  집에 구비되어있고, 온갖 맛있는 빵들과   주고는 절대  사먹는 마카롱 같은 달달구리는 끊이질 않고, 귀욤뽀짝한 팬시용품들이 집에 한가득이고, 얼마 전에는 하나하나 손으로 빚어 만든다는 수제 캔디도 처음 먹어봤다.(원래 딸한테  거였는데 딸내미가 고급진 사탕이 느끼하다나 뭐라나 암튼  좋아해서   차지가 ) 친구는 나에게 신문물을 전해주는 방물장수(나는 방판 아줌마라고 부른다) 같은, 아니 화수분 같은 존재다.


보통 관계가 유지되려면 give and take여야 하는데, 우리 관계는 심히 불균형적인 상태에서 10년 가까이 유지되어왔다. 나는 한 번도 챙긴 적이 없는데 친구는 생일 선물, 설날 세뱃돈, 입학 졸업 선물, 여행 가면 달러까지 때마다 챙겨준다. 물론 나도 뭔가 주긴 하지만 친구한테 받는 것에 비하면 소소한 것들이다. 나는 도저히 갚을 길이 없어서 매번 이런 거 가져오지 마라, 자꾸 그러면 안 만난다고 협박도 해봤지만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제는 포기했다. 그냥 기쁘게 받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면 친구도 좋아하니까, 그냥 그 방법 밖에.


아직은 민트색 블루베리


요즘엔 화분을 갖다 안기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는 집에서 키우던 올리브 나무와 블루베리 나무를 사들고 왔다. 처음에 왔을 때 민트색 블루베리가 몇 주 만에 블루해졌다. 다섯알 따놓고 한참을 바라본다. 그대 안의 블루가 아니라 블루 안의 그대다. 그대처럼 너무 예뻐서, 그대만큼 진짜여서 차마 먹지 못하고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있다......

.......고 친구에게 문자와 인증샷을 보내고 낼름 입에 털어 넣었는데 참 맛있더라~~ㅎㅎ).


너무나 회화적인 블루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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