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무엇이든 씁니다 Jul 11. 2021

황매실

게으름의 대가

딸이 매실청을 좋아한다. 여름에 매실청으로 온 더 락 한 잔이면 행복해진다.


올해는 내 손으로 직접 매실청을 담가야지, 하고 매화가 폈을 때부터 벼르고 있었다. 근데 그게 마음속으로만 벼르고 있던 게 문제였다. 손발이 게으른 탓에 매실 때를 놓쳤다. 청매실이 안 되면 황매실이라도 구하려고 여기저기 수소문했지만 구하지 못했다. 아쉽지만 내년을 기약하기로 했다.


그러고도 한참 뒤 친구가 황매실 구매 가능한 쇼핑몰이 있다며 알려줬다. 기쁜 마음에 초짜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대왕 매실로 10kg나 주문했다. 드디어 내 손으로 매실청을 담가보는구나, 하는 설렘과 동시에 너무 많이 주문한 거 같아 겁이 나기도 했다.


벌써 도착해야 할 매실청은 오지 않고 엉뚱한 전화가 왔다. 그새 너무 익어서 도저히 보낼 수가 없겠다고 했다. 매실을 기다리며 며칠간 보글보글 숙성 중이던 설렘과 걱정이 동시에 ‘펑’ 하고 사라졌다. 속상하기도 하고, 좋기도 했다. 매실은 나와 인연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사서 먹는 걸로 마음을 접었다.


그러고도 여러 날이 지난 어제저녁, 친구네 집에 놀러 갔는데 마당에 주먹만 한 살구가 마구 뒹굴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게 황매실이었다. 실물은 처음이었다. 그 집에 자주 들락거리면서도 황매실을 살구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알아야 보인다.


크기 좀 보소


나의 매실 이야기를 듣더니 따 갈 수 있으면 따 가라면서 저 높이를 가리켰다. 낮은 곳은 다 땄고 높은 곳엔 좀 달려 있었다. 매실이 굴러들어 왔는데 안 딸 수 없지. 남편과 나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아슬아슬한 높이에 있는 매실을 따왔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몇 가지를 깨달았다.


게으름이 때로는 나쁘지 않다.

등잔 밑이 어둡다.

알아야 보인다.

만날 사람(?)은 꼭 만난다.

집에 매실나무를 심자.


매거진의 이전글 이 썩을 예술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시작하기

카카오계정으로 간편하게 가입하고
좋은 글과 작가를 만나보세요

카카오계정으로 시작하기
페이스북·트위터로 가입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