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적이고 우주적인 삶
딸이 한 달 동안 달을 관찰해서 기록하는 과학 숙제를 한 적이 있었다. 딸이 요란한 스타일이라 자동으로 온 가족이 함께 달을 보곤 했다.
다행히 우리 집은 달세권이다. 사방에 큰 건물이 없고 도시처럼 조명이 밝지 않아서 달을 관찰하기가 좋다.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 또는 남중이 한밤 중에 와서 달을 못 보는 날에는 '스텔라리움'이라는 천문 프로그램으로 달을 볼 수 있었다. 스텔라리움은 달 뿐만 아니라 태양, 달, 행성과 별자리를 시간대 별로 볼 수 있었는데 신천지가 따로 없었다. 남편과 나는 거대한 우주를 흑백의 평면에서 배우느라 머리에 쥐가 나던 라떼와 비교하며 감탄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달을 본 것이 습관이 되었는지 우리는 매일 저녁 달을 보고 있다. 저녁 먹고 나서는 산책 길에 달을 찾아 오늘은 초승달이네, 오늘은 반달이네, 오늘은 배가 왼쪽으로 불룩하네, 오늘은 꽉찬 보름달이네, 하면서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을 보면서 길 위의 대화를 나눈다.
심각한 자랑질일 수 있는데, 우리는 방구석에서도 달을 본다. 그것도 눕방으로! 소파를 기준으로 동남쪽에 큰 창문이, 남쪽으로는 가로로 긴 고정창, 세로로 긴 고정창이 있고, 북서쪽으로 큰 창이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달이 서쪽에서 떠서 동쪽으로 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방구석에서 우주적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꿈인가 생신가 하면서 감격스러워 한 적도 있고, 윌리엄 워즈워스라도 된 것처럼 달만 봐도 가슴이 뛰고 설레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까지 낭만에 빠져 있지는 않고 TV 보다가 문득 창문 어딘가에 걸린 달을 보고 서로 아는 척을 할 뿐이다.
달과 지구와의 사이의 거리가 평균 38만 4400km라고 한다. 내가 요즘 반경 1km 안에서 왔다 갔다 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정말 아득한 거리지만 그 거리가 무색하리만큼 우리는 달과 가깝고 친근하다. 동네를 어슬렁어슬렁 걷다가 보고, TV 보려고 누워서 발가락을 까딱거리다가 본다. 우리에게 달은 여기 너머의 이상적 존재라기보다는 지금 여기에 함께 있는 현실이다. 어찌 보면 우리가 택한 시골스럽고 주변적인 환경, 너무 바쁘지 않고 소박한 삶에서 오는 특권이다. 특히나 지금 같은 팬데믹 시절엔 너무나 소중한 특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