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무조건이야
저때 안 갔으면 어떡할 뻔했어?
세상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어?
언제 다시 자유롭게 여행 다닐 수 있을까?
저때 가길 정말 잘했다!
역시 갈 수 있을 때 가야 돼!
요즘 가장 많이 하는 말 또는 생각이다. 우리 집 냉장고에 떡하니 붙어 있는 여행 사진을 보고 하는 말이다. 2018년 퇴사 후 딸과 함께 유럽 배낭여행을 하고 와서 딸이 만든 것이다. 이후 새로운 사진이 업데이트되지 못하고 여기에 머물러 있다.
나는 여행을 신봉하다시피 하는 사람으로서 비행기 편도 티켓을 끊을 돈만 생기만 늘 떠날 궁리를 하고 실행에 옮기곤 했다. 남편이 집 짓고 싶다고 노래를 부를 때도 나는 반대했는데, 반대하는 제1 논리가 집 지을 돈 있으면 여행 가겠다는 거였다. 하지만 떠나고 싶은 나의 욕망보다 정착하고 싶은 남편의 욕망이 승리했고, 어쩌다 집을 지었다. 집 짓느라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 대느라 통장 잔고가 바닥난 상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데믹 상황만 아니었다면 아마 땡빚을 내서라도 멀리 여행을 떠났을 것이다.
돈 모을 궁리는 안 하고 여행 다니며 길거리에 돈을 뿌리고 다닐 때 한 걱정을 늘어놓다가 체념한 우리 어머니께서 그러셨다.
그래 다닐 수 있을 때 실컷 다녀라, 나중에 결혼하고 애 낳고 하면 못 다닌다.
근데 결혼하고 애 낳고도 매년 여행을 다니니까, 어머니가 그러셨다.
그래 지금 실컷 다녀라. 돈 있어도 나중에 늙고 다리 아프면 못 간다.
엄마가 뜯어말려도 가볍게 무시하고 나는 떠났겠지만, 이제 공히 엄마도 허락하셨겠다, 실컷 쏘다니는 일만 남았다. 여름휴가 때 길어야 일주일이었지만 이제 퇴사도 했겠다, 딸이 제법 대화가 통할만큼 많이 컸겠다, 장기 여행하기 딱 좋은 때인데 이 놈의 바이러스에 꼼짝을 못 하고 있다.
지독한 보릿고개에도 나에겐 꺼내먹을 옥수수가 있다. 냉동실에 얼려둔 옥수수를 하나씩 꺼내 해동시켜 먹는 맛이랄까. 지금 코로나로 집콕하면서도 머리로는 세계를 떠돌고 있다. 그동안 실컷 다녔던 여행이 두고두고 파먹을 수 있는 추억이 되었다. 이번 팬데믹 상황에 다시 한번 얻은 교훈은 떠날 수 있을 때 무조건 떠나야 한다. 퇴사하면 퇴직금 들고 무조건 떠나야 한다. 다음은 없다. 무조건 무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