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by 무엇이든 씁니다

"아빠, '포괄적'이라는 게 뭐야?"


아빠와 함께 TV를 보던 딸이 물었다. 답이 없다. 다시 물으니 사전 찾아보라고 한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말 잘 듣는 딸이 국어사전을 뒤적거렸다. 몰라서 사전을 찾아봤는데 더 아리송한가 보다. 멀찌감치에서 듣고 있던 내가 설명을 시작했다.


"'포함하다'라는 말 알지? 그 말이랑 비슷한 말이야. '포'가 꾸러미라는 뜻이야. 그러니까 꾸러미에 여러 가지를 넣어서 하나로 묶는다는 말이야. 예를 들어...음......"


남편이 늘 그런 건 아니다. 야구와 스타워즈와 마블, 아이돌 노래 등 공통의 관심사에는 대답도 잘하고 호응도 잘해준다. 하지만 개념을 묻거나 추상적인 질문을 할 때는 '대답 없는 너'가 된다. 그러니 야구와 마블 말고 나머지 질문에 대한 답변은 온통 내 차지가 된다. 남편에게 대답을 잘 안 해주는 이유를 물었더니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해한다. 애들에게 설명하는 게 오히려 어렵다. 나라고 다 아는 게 아니다. 어렵고 서툴긴 나도 마차가지다. 하지만 일단 반응을 한다. 내가 하는 대답이 완벽할 수 없고 또 반드시 정답을 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도 자기가 나름대로 획득한 정보와 문맥, 상황을 종합해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답을 찾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잘 모르면 같이 찾아가면 된다. 소통이고 배움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나중에 딸의 원망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아이 교육에 대해 고민이 깊거나, 특정 목표(입시 등)를 가지고 있지 않다. 특정한 목표 없이 살아가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자유롭게 흘러가보려고 한다. 좋은 말로 하면 모든 것에 열려 있고, 나쁜 말로 하면 무계획 또는 별 생각이 없다. 내가 그런 상태다 보니 아이를 뒤에서 떠미는 푸시형도, 어떤 플랜을 가지고 앞에서 이끄는 풀형 부모도 아니다. 굳이 정하면 반응하는 부모 정도가 될 것이다. 그게 나의 유일한 원칙이다. 아이가 질문을 할 때는 알고 싶은 욕구가 충만해 있는 상태로 가장 배우기 좋은 때임을 암시한다. 따로 가르칠 필요없이 그때라도 호응하자는 게 내 생각이다.


문제는 이렇게 소박한(?!) 실천이 참 어렵다는 것이다. 외동딸인 데다 코로나 19로 하루 종일 둘이 붙어있다 보니 하루 종일 질의응답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낱말의 뜻을 묻는 건 양반이다. 아주 사소하고 구체적인 것부터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질문까지 나아간다. 가끔 아이들은 아주 근본적이고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잘만 하면 인문학적 배움의 장이 열리겠지만, 나는 늘 서툴다. 내가 소크라테스도 아니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는 쉽사리 인내심이 바닥난다. 어떨 때는 말문이 막혀 멍하고, 설명했는데도 못 알아먹으면 화가 난다. 세상 차분하게 친절하게, 좋게 좋게 시작했다가 훈계하고 반 협박조로 윽박지르기도 하고, 반강제로 답변을 종료하기도 한다. 아이의 질문에 답변하고 응답하는 일은 물리적인, 가시적인, 계량적인 노동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감정노동이 수반된다. 학교에서 하루 종일 선생님들이 얼마나 피곤할지 이해가 된다.


이제 나도 좀 살아야겠다. 질문을 못하게 막을 수는 없으니, 교대근무를 좀 실시해야겠다. 최소한 코로나 휴교 동안만이라도 일출에서 일몰까지는 내가 어찌어찌해볼 테니 일몰 이후에는 남편이 교대해주기를 기대한다. 남편, 보고 있나?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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