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 생활 독립운동__나 홀로 온라인 학교
오늘 초등학교 5학년 딸이 온라인 개학을 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5학년이 되었다. 나는 디지털 기기와 친하지 않고, 앞으로 친해질 계획이 없어서 온라인 개학 준비를 남편에게 맡겼다. 남편이 노트북에 e학습터와 zoom을 깔고 딸에게 사용방법을 설명해주었다. 나는 온라인 학교=엄마 학교가 되는 것을 매우 경계하고 있던 터라 딸에게 가능한 나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배워서 했으면 좋겠다고 미리 말해두었다.
온라인 개학, 솔직히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온라인으로 뭘 얼마나 배우고 또 재미를 느낄까 싶어서 온라인 개학에 회의적인 편이었다. 그런데 딸은 매우 진지했고 예상외로 재밌어했다. 그동안 너무 오래, 너무 많이 놀아서 그럴까? 새로운 방식에 호기심 때문에 그럴까? 온라인 학교라도 가는 게 좋다고 했다. 학교 간다고 8시 전에 일어나 착석했고, 8시 정각에 1번으로 출석체크를 완료했다. 시간표에 따라 필요한 교과서와 선생님이 전달해준 교안을 책상에 차례로 놓고 다소곳이 앉아 1교시를 기다렸다. 9시가 되자 1교시 국어부터 수학, 사회, 도덕 수업을 차례로 나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스스로 해갔다. 몇 시간 동안 조용히 앉아서 뭘 하는 딸이라니... 감격@@^^
정말 점심시간에 맞춰 점심을 먹었다. 양치질까지 하고 1시 30분 정각에 칼 같이 착석하여 나 홀로 미술 수업을 이어갔다. 찰흙으로 '내 모습'을 만드는 거라고 했다. 찰흙을 만지작거리더니 찰흙을 보니 집이나 그릇을 만들고 싶은데 그래도 되냐고 물었다. 이번에 집을 지어 보니까 집은 집주인을 닮는 것 같다고 얘기해주었고, 뭘 만들어도 그건 자신의 모습을 닮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구상이 끝난 듯 찰흙을 비벼대기 시작했고 꼬박 한 시간 만에 하트 모양의 그릇을 빚어냈다. 짜잔~!
3시부터는 zoom으로 선생님, 아이들과 온라인 학교 첫날에 대한 소감을 나누기로 했다. 처음엔 사적 공간의 자기 모습이 드러나는 게 사생활 침해가 아닐까 걱정된다고 했다. 컴퓨터로 얼굴을 내보내는 게 무섭다고 싫다고 했다. (아무래도 n번방에 대해서 내가 설명한 것이 뇌리에 남아서 그런 것 같ㅜㅜ) 오늘 일단 선생님과 아이들과 얼굴 보고 인사만 하고 안 해도 된다고 했다. 막상 선생님, 친구들 얼굴이 하나둘 보이니 신기해하고 좋아라 했다. 온라인 학교 첫날을 무사히 마치고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늘 수업이 끝나자 동네 한 바퀴 돌고 오겠다며 집 밖으로 뛰어 나갔다.
온라인 개학 첫날 느꼈다. 아이들은 진지하고 책임감이 있다. 온라인 학교도 학교다. 딸을 보니 시간표와 과제를 하나의 약속으로 여기는 듯했다. 선생님도 옆에 없겠다, 나도 터치 안 하겠다, 대충대충 또는 장난스럽게 할 줄 알았는데 매시간 진지하게 수업에 임했다. 너무 진지해서 낯설 정도.
아이들은 빠르게 학습한다. 나는 온라인 개학이 아이들에게 낯설고 복잡해서 못하거나 실효성이 없고, 금세 집중력을 잃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클릭 몇 번 만에 빠르게 적응해갔고, 놀라운 집중력을 보였다. 역시 디지털 네이티브인 건가. 선생님이 수학 수업을 동영상으로 찍어 올려주셨는데, 이해가 안 되면 여러 번 반복 재생하면서 학습을 해나갔다. 쌍방향이 안 되는 건 단점이지만, 반복 재생할 수 있는 건 장점인 것 같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어른보다?) 인내심이 뛰어나다. 몇 번씩 버퍼링이 일어났다. 나 같으면 짜증내고 몇 번 해보다가 시스템이 버벅거리면 그 핑계로 자리를 이탈할 거 같은데 자리에 앉아 정상화되기를 계속 기다렸다. 처음이라 그런 건가.
내 예상이 빗나갔다. 딸에게 온라인 학교 첫날은 매우 성공적인 듯하다. 내용과 형식을 떠나 아이의 집중도와 만족도만 보면 그렇다. 물론 일반화할 수 없고 아이들마다 편차는 있겠다. 이게 며칠이나 계속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문제는 교사와 부모들의 생고생이다. 교사들은 난생처음 동영상이라는 걸 찍어 올리고, 그게 부모들에게도 공개되는 셈이니 매일매일 공개학습이다. 스트레스가 대단할 것 같다. 부모들은 아이에게 적합한 환경을 조성하고 순서를 따라가느라 카톡방에서 분주하다. 학교에 보내버리면 안 봐도 됐을 아이들의 모습을 매 순간 보면서 복장이 터질 수 있다. 아이를 혼자 두고 출근한 부모, 아이들이 여럿인 부모, 온라인 방식을 힘들어하는 아이의 부모들은 매일 전쟁일 것이다. 온라인 학교가 서로에게 얼마나 유효한 방식인지, 얼마나 지속 가능한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