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를 기다리며
늦잠 자긴 글렀다. 어디서 봤는지 아침 일찍 가야 더 많은 새를 볼 수 있다며 7시부터 딸내미가 부지런을 떨었다. 딸내미 득살에 세수도 못 하고 옷만 대충 입고 따라나섰다.
최근에 우리는 가까이에서 세 가지 보물을 발견했다. 우선, 우리 가족이 주말마다 산책 가는 동네 습지에 생각보다 많은 종류의 새가 서식한다는 점, 둘째 남편이 새에 대해 (적어도 우리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점, 그리고 딸 생일선물로 사준 3만원짜리 10배율 망원경이 꽤 쓸만하다는 것. 우리는 오늘부터 남편을 '대장동 새박사'라고 부르기로 했다. (전국구 새박사로 승급하기 위해서는 혹독한 검증이 필요함)
전날 비가 와서 그런지 하늘도 맑고 물도 맑았다. 최근 어지러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지난주 보이지 않았던 (흰뺨검둥)오리들이 대거 나와 있었고, 옆에 백로가 한가히 노닐고 있었다. 모래톱 위로 알락할미새(너무 작아서 맨눈으로 보면 벼룩이 톡톡 뛰는 것처럼 보임)가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오늘 우리가 보고자 하는 새는 얼마 전 이곳에서 목격된 왜가리와 민물가마우지, 황조롱이였다. 습지에 도착한 후 얼마 후 가마우지와 왜가리가 나타났다. 새를 쫓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니 오히려 새를 쫓는 꼴이었다. 그런 나를 보더니 딸이 한 소리했다.
새를 보려면 한 자리에 오래 머물러야 한대. 그래야 새가 날아 온대"
딸은 가끔 뼈 때리는 말을 한다. 정말 그랬다. 한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으니 내 머리 위로 온갖 새들에 날아다녔다. 우리는 한 자리에 앉아 망원경으로 새들이 노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황조롱이의 호버링만큼이나 민물가마우지의 잠수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왜가리가 둥지를 만들려고 나뭇가지를 물고 온 것과 가마우지 한 쌍의 잠수 쇼, 하늘에서 영역 싸움을 벌이는 물떼새(확실치 않음)를 보니 새들의 짝짓기 시즌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가마우지가 잠수를 하다가 물 위로 올라와서 갑자기 부채 펴듯이 깃털을 쫙 펴고 정지한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집에 와서 도감을 찾아보니 가마우지 날개의 방수가 완벽하지 않아서 깃털을 말리는 모습이라고 한다. 신기하고 재밌다. (사진으로 포착하지 못해 아쉬움)
새들이 날아다니고, 물가에 노닐고, 유영하고 잠수하는 모습들이 사람 눈에는 참 자유롭고 우아하고 멋있어 보이지만, 사실 치열하게 먹고사는 모습이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있다. 매일 매순간 치열하게 살다가도 가끔은 멀찍이 떨어져 내 삶을, 그리고 내 모습을 돌아볼 필요도 있는 것 같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