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칼을 쥐어주다

초딩 생활 독립운동 7_도구 사용법

by 무엇이든 씁니다

요즘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삼시세끼 챙겨 먹이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어디 삼시세끼뿐인가. 한창 클 나이라서 그러는지 밥 먹고 뒤돌아서면 배고프다고 난리다.


간식으로는 과일이 제일 만만하다. 과일 중에서도 딸기를 좋아하는데, 딸기는 껍질이 없어 먹기 가장 편한 축에 속하는데도 매끼마다 딸기 꼭지 따주려니 슬슬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밥 먹고 치우고 나서 늘어져 있을 때 먹을 걸 달라고 하니 나도 꼭지가 돌기 시작했다. '니가 좀 씻어 먹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을 때, 정말 혼자 씻어먹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할 수 없이 딸에게 칼을 쥐어줘야 했다.


다섯살 무렵 칼질


처음은 아니다. 아주 어릴 때(내 기억으로는 다섯살 때)부터 딸에게 칼질을 가르쳐주긴 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내가 칼질할 때마다 와서 자기도 하겠다고 달려들었다. 그래도 선뜻 칼을 내어 주지 못하다가 독일의 숲유치원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숲유치원은 말 그대로 숲에서 하루를 보낸다. 자연에서 놀다 보면 자연물이 놀잇감이 되고 이런 것들이 모이면 뭘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 마련인데, 이때 도구(연장)의 사용은 필수다. 망치와 칼은 그렇다치고 무려 작은 톱이나 도끼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했다. 대여섯 살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 도끼와 칼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모습을 보고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아이들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뛰어나다.

칼(도구)이 위험하기보다 칼을 잘못 사용하는 것이 위험한 것이다.

칼(위험)로부터 무조건 보호하기보다 잘 사용하는 법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


딸에게 칼을 쥐어줬다. 무딘 과도부터 시작했고, 오이처럼 잘 썰리는 것부터 썰게 했다. 처음 썰었던 것이 오이였던 거 같은데, 그때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역시 인간은 호모 파베르(Homo Faber)라는 것을 실감했다.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 도구를 사용해서 스스로 뭔가 만든다는 것은 본능에 가까운 일이며 큰 쾌감을 선사한다.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다. 칼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려주고 칼질을 하게 하면 아이들은 매우 신중하게 조심조심해서 칼질을 한다. 물론 이러다가 손을 베일 수도 있다. 하지만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이런 위험과 상처로부터 완전히 보호된 진공상태에서 아이를 키울 생각이 없고, 그럴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작정 못 하게 하기보다는 잘 배우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칼의 유용성과 위험성을 둘 다 배우는 것이 오히려 위험을 줄이고 남용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 술을 배울 때 어른들에게 잘 배워야한다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ㅎ. 도구를 사용할 자유를 허용할 때는 그에 내재된 위험과 상처도 함께 감수해야한다.


내 나름의 학습과 경험을 바탕으로 어린이집 요리시간에 칼 사용법을 알려주고 과도를 사용하게 하자고 했다가 거센 반대에 부딪혔던 기억이 있다. 안전불감증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지금도 학교 요리수업에서는 플라스틱 빵칼을 사용한다. 나는 그 마음과 선택도 존중한다. 아이들마다 다르고, 환경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보호자가 불안하고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고 판단한 때는 안 하는 게 맞다. 보호자가 불안하면 그 불안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에 더욱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호자가 아이의 발달과 기질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고, 보호자의 철학이 선다면 보호자의 가이드 하에 칼 사용법을 가르쳐보라고 권하고 싶다.



한동안 칼질 안 하다가 오랜만에 칼을 잡아서 그런지 딸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도마에 놓고 자르는 것보다 어디에 의지할 데가 없어서 더 난이도가 높은 칼질이다. 왼손은 딸기를 쥐고, 칼을 쥔 오른손 엄지로 딸기 꼭지를 누른 상태에서 칼질을 해보라고 했다. 한두 번, 하루이틀 해보더니 이제 드디어 제 손으로 딸기 꼭지를 따고 딸기를 씻어먹을 수 있게 됐다. 이제 딸기만 사다 놓으면 된다. 이제 니 딸기는 니가 씻어먹어라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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