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 생활 독립 운동 6__우선순위 정하기
"으악!"
일요일 저녁 잘 시간을 앞두고 갑자기 딸이 소리를 질렀다. 고양이랑 놀고, 강아지랑 놀고, 친구들이랑 놀고, 게임도 하고, TV도 보면서 그야말로 놀고먹고, 놀고먹고 먹고대학생처럼 놀다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 것이다. 갑자기 해야 할 일들이 생각난 것이다.
그래 봤자 대단한 것도 아니다. 개학이 늦어지면서 선생님이 내준 수학 숙제(하루에 20문제)와 독서록(일주일에 한편), 그리고 소소한 일일 미션, 피아노 연습(일주일에 두 번)이 있었고, 그리고 동네 친구가 영어 공부하는데 끼어서 함께 외우기로 한 초간단 영어 동화가 다였다. 내가 볼 때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들인데, 딸아이는 곧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 같았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가끔 이런 딸의 모습을 본 동네 친구들이 도대체 누굴 닮은 거냐고 우리를 놀리곤 한다. 그러게... 현재 시점으로 보면 둘 다 아닌 것 같지만, 굳이 따지자면 어린 날 순종적이었던 남편을 좀 더 닮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지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편이다. 딸은 학교에서 내준 숙제와 피아노 연습 등을 하나의 약속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참 좋은 건데, 한번씩 이렇게 난리를 필 때마다 융통성이 없는 것 같아 답답하다.
누굴 닮았건 기질이 그런 거야 어쩔 수 없고, 일단 달래야 한다. 그래서 이런 숙제는 미뤘다 해도 괜찮고, 좀 안 해도 상관없다고 했는데도 벌써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 진작에 하던지...
이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으나 꿀꺽 삼켰다.
차분히 앉혀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물리적으로 한꺼번에 할 수 없으니 '우선순위'를 정하라고 했다.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하긴 지금까지 우선순위를 정할 만큼 해야 할 일이 많았던 적도 없었다. 뭐부터 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는 눈치였고, 고민은 길어졌다.
그럴 시간에 하나라도 하겠다
다시 목구멍까지 치밀었다. 다시 꿀꺽 삼키고 우선순위라는 말을 풀어서 설명해주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
안 하면 가장 마음이 불편하고 힘든 것
장고 끝에 친구와 함께 외우기로 한 영어 동화부터 외우기 시작했다. 우선순위를 정한 이유는 따로 영어 공부를 해본 적이 없어서 부담스럽고, 친구와 함께 하기로 한 것이어서 좀 더 책임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우선순위로 정한 영어를 다 외우고 나서야 다시 평정심을 되찾았다.
놀다가 벼락치기하기는 너무나 흔한 해프닝이지만, 이번 기회에 우선순위를 정하고, 시간계획하는 것을 배울 때라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휴교가 더 길어질 것 같아서 더욱 그렇다. 더 나아가 당장 닥친 것을 헤치우는 데 급급하지 말고 자신에게 진짜 중요한 것을 우선적으로 하는 딸이 되길 바란다. (꼭 나도 잘 안되는 걸 자식에게 바라게 된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