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 생활 독립운동 5_프리스타일 방학 계획
두 달 남짓 되는 긴긴 겨울 방학 동안 딸은 무계획 프리스타일로 실컷 놀았다. 유일한 루틴은 일주일에 두 번, 한 번에 30분씩 동네 친구 엄마의 집에서 피아노 치는 거였다. 혁신학교여서 그런 건지, 담임 선생님 프리 스타일인 건지 모르겠지만, 방학숙제가 없었고, 나도 프리 스타일이라 학습지나 학원, 과외 등등 일체의 사교육이나 가정학습을 시키지 않았다. 사교육은 절대 안 된다는 원칙이 있어서도 아니고, 아이 교육에 대한 특별한 철학이 있어서 그러는 것도 아니다. 내가 살아보니까 노는 게 남는 거더라, 지금 아니면 언제 이렇게 아무 생각없이 실컷 놀겠나 싶어서 그냥 실컷 자유롭게 놀아봐라, 하는 마음이었다. 방학 동안 딸내미의 하루는 대략 이랬다.
눈 떠지는 대로 일어나기(일찍 자면 8시, 늦게 자면 9시)
아침 스스로 차려 먹기(토스트나 스크램블 에그과 우유)
아침 먹으면서 책 보기(주로 만화책)
피아노 연습하기(피아노 하는 날 벼락치기)
여름이(우리 집 반려견) 산책시키기
도둥이, 보둥이, 뚤뚤이, 코뻥이(동네 강아지들) 보러 가기
자전거 타고 동네 한 바퀴 돌기
행복이, 레오(친구 집 고양이들) 보러 가기
동네 풋살장에서 동네 애들이랑 축구하기(feat. 동네 친구 아빠)
조용하면 아마도 몰겜
그림 그리기(자기가 대단히 잘 그린다고 생각하며 화가나 디자이너를 꿈꾸고 있음)
보드게임, 레고, 인형놀이(5학년인데 아직 인형놀이)
친구랑 춤추면서 안무 짜기(춤추다 보면 땀에 흠뻑 젖음)
TV 애청자인 아빠와 함께 TV 시청하다 졸릴 때 방에 들어가 자기
주말엔 동네 습지공원 가서 조깅 및 탐조활동(오리와 백로)
순서만 조금씩 바뀔 뿐, 요 프로그램 안에서 방학을 보냈다. 특별히 어디 가지도 않고 동네에서만 놀았다. 놀만큼 놀아서 그런지, 방학 중반부터는 개학을 손꼽아 기다렸다. 빈둥빈둥 대면서 프리 스타일로 노는 게 좋으면서도, 뭔가 규칙적인 학교생활과 약간의 학습이란 게 그리운 것 같기도 했다. 5학년 때는 뭘 배우는 지도 궁금하고, 어떤 친구들과 모둠이 될지도 궁금하다고 했다.
이토록 소박한 꿈은 코로나 19로 멀어졌다. 무려 3주 뒤로 개학이 미뤄진 것이다. 딸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이제 '뭘 하면서 놀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난데없이 '수학 문제집이라도 사달라'고 했다. 학교에 못 가니 이제 수학 문제라도 풀어야겠다고 했다. 얘길 들어보니 그동안 친구들이 집에서 수학 문제집 풀고, 수학학원에 가는 게 은근히 부러웠다고 했다. 와! 놀다 놀다 지치면 수학 문제가 그리울 수도 있는 건가? 난 놀고 놀아도 놀고 싶던데...신기할 따름일세. 근데 수학 문제집은 어디서 사는겨? 어떤 걸 사야 하는겨? 초등학교 교사인 옆집 엄마 도움을 받아 개학 예정이던 3월 2일부터 수학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물론 하루 종일 수학 문제 푸는 것은 아니고, 아침에 잠깐 수학 문제 풀고, 나머지 놀기는 그대로 하고 있다. 빨리 코로나 시국이 끝나길 바라지만, 혹시나 개학이 또 늦춰지면 이제 뭘 하겠다고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