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국가의 가혹한 동거

거대한 역사의 흐름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by 요가여니

영화 <사마에게>는 시리아 내전을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영화 <그을린 사랑>은 내전이 비일비재한 레바논을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소설 <연을 쫓는 아이>는 1970년대 이후 파란만장했던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한다. 시리아, 레바논,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팔레스타인 등 우리에게는 항상 전쟁이 일어나는 곳으로 익숙한 나라들. 도대체 이 나라들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그곳에서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


영화나 소설로 접한 중동 지역의 역사가 궁금해 중동에 얽힌 이해관계에 대한 책을 몇 권 읽은 후, 나는 이 지역의 국가 개념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국가 개념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국가가 하나의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중동 지역의 나라들, 예를 들어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란, 이라크 등의 국가들은 서로 다른 종교 집단과 민족이 복잡하게 얽혀 하나의 국가로 묶여 있다. 너무나도 다른 민족들이 '국가'라는 틀로 묶여 울며 겨자 먹기로 동거를 하게 된 셈인데,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승전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오스만 제국을 해체하면서 임의로 그은 국경선 때문이었다. 이들은 각 민족이 주로 활동하고 있는 영토와 상관없이 여러 민족을 '짬뽕'해서 여러 나라를 만들었는데, 예를 들어 쿠르드족은 이라크, 이란, 시리아, 터키 등등으로 나뉘게 되는데 이는 강대국들이 이슬람 세력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였다는 주장도 있다. 이 때문에 쉽게 이해하면 중동 지역의 많은 내전은 다른 문화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여러 민족들이 한 국가로 묶이게 되고 이것이 자연스레 세력 다툼으로 이어지면서 발생하게 된, 어쩔 수 없는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석유의 이권을 놓지 않으려고 하는 강대국들이 내전에 숟가락을 얹게 되면서 갈등이 해결되기보다는 그 골은 더 깊어지고 있다. 위에 소개한 영화 <사마에게>, <그을린 사랑>, 소설 <연을 쫓는 아이>의 배경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영화 <사마에게>의 배경이 된 시리아 내전은 독재 정권에 대한 시위를 계기로 정부군과 반군의 전쟁으로 시작되었는데, 시리아에서 어떤 세력이 권력을 잡느냐에 따라 이권이 달라졌던 주변 나라 및 강대국들의 무기 지원, 공습 등의 개입과 반군 내에서의 오랜 세력 갈등으로 인해, 독재자를 축출하고 민주 정부를 설립하려는 의도는 사라져 버리고 이제는 무엇 때문에 서로에게 총을 들이대는지도 모르게 된 전쟁이다. 영화 <그을린 사랑>의 경우 레바논 내전을 배경으로 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레바논 또한 기독교, 이슬람의 시아파, 수니파 이렇게 세 종파가 강대국에 의해 한 국가가 되었는데 비교적 일정한 비율로 평화롭게 유지되던 인구 비율은 팔레스타인 난민 수용으로 인한 이슬람 인구 증가로 깨져버리고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몇 가지 무력 충돌이 발단이 되어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한 내전으로 전개되었으며,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이슬람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무고한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게 된다.

마지막으로 너무나 유명한 소설 <연을 쫓는 아이>는 1970년대부터 전쟁이 끊이지 않는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도대체 어떤 정치적 이유 때문에 우리 기억 속에 저주의 땅으로 남게 된 것인가 하니, 이 또한 다민족 국가에서 오는 내적 갈등 그리고 주변국들의 이해관계에 의한 갈등이 발단이 된 것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은 다민족 국가라는 점 말고도 치명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은 아프가니스탄이 냉전 시대에 러시아와 미국이 세력 다툼을 하게 되는 요충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은 군사 쿠데타를 거치며 크게는 이슬람주의 세력과 공산주의 세력이 무력으로 인한 권력 투쟁을 계속해서 벌이는 중이었는데,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영역을 잃을 수 없었던 러시아와 미국이 군대를 파병하고 무기를 지원하며 전쟁의 규모는 더욱 커지게 되고, 이 과정에서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인 탈레반이 등장하면서 사태는 지금까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역사를 제대로 알면 알수록 과연 이 지역에 평화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더욱 강해진다. 많은 사람들의 피로 어떤 세력이 하나의 전쟁에서 승리한다 하더라도 다른 민족의 반격으로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정도로, 이 뿌리 깊은 민족과 종교와의 갈등은 이 지역을 시한폭탄의 땅으로 만들고 만다. 게다가 중동에서 생산되고 있는 석유는 강대국들로 하여금 중동 지역의 평화를 허락하지 않는데, 실제로 이란에서의 석유 사업을 국유화하려고 하는 이란 정부가 못마땅했던 미국은 반정부 세력의 쿠데타를 주도하여 무력으로 친미 정부를 세우도록 하기도 한다. 내전이 스스로 종식될 것이라는 믿음도 요원한데 강대국들의 개입은 갈등을 진정시키기는커녕 분쟁을 더욱 키우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무고하게 희생되는 것은 평화로운 일상을 꿈꾸는 민간인들과 무엇보다도 전쟁 속에서의 삶이 일상이 되어버린 아이들이다. 영화 <사마에게>에서는 소년 두 명이 폭격에 희생된 소년을 병원에 데리고 와 자신의 친척이니 제발 살려달라고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들은 밖에 잠깐 나왔는데 갑자기 폭탄이 떨어졌다고 말하며 만신창이가 된 몰골로 눈물을 뚝뚝 흘린다. 결국 그 소년은 사망하게 되는데 시체를 치울 새도 없이 자기 자식들이 숨을 쉬지 않는다며 달려오는 부모들로 병원은 아수라장이 된다. 하지만 이렇게 끔찍한 일을 눈앞에 들이대며 무엇 때문에 전쟁을 하느냐고, 종교나 민족의 권력이 그리고 정치적 이권이 사람 목숨보다 더 중요하냐고 따진다면, 안타깝게도 전쟁의 중심에 있는 자들은 어쩔 수 없다 할 것이다.


세력 다툼 그리고 자원에 대한 이권 획득, 정치적 권력 장악이라는 이유들로 전쟁은 끊이지 않고 죄가 없는 많은 사람들만 죽어나가고 있지만, 민족이 존재하고 종교가 존재하고 약소국이 존재하고 강대국이 존재하고 또 석유라는 자원이 존재하는 한 이 갈등은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동의 많은 전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것인가? 영토와 자원을 놓고 싸우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므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된다고 하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무력함만을 느껴야 하는 걸까?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간의 역사는 개인에 비해 너무나 거대해서 나 한 사람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갈등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할 수 있다. 어떤 강대국이 숭고한 이유를 내세우며 전쟁을 일으킬 때는 이면에 어떤 이해관계가 숨겨져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고, 이슬람인들은 모두 폭력적이고 미개해서 전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을 것을 선택할 수는 있다. 전쟁은 있어서는 안 돼, 하고 막연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어떤 이유로 전쟁이 발발하게 됐는지 알아보고, 그 문제에 대해 발언할 기회가 있을 때 객관적으로 주장하기를 선택할 수는 있다.


책과 영화로 접한 빙산의 일각만큼의 역사를 오늘도 이렇게 글로 정리하고는 있지만, 내가 전쟁을 멈추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체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지 진짜 이유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단순히 중동은 세계의 화약고, 이슬람인들은 테러리스트, 전쟁밖에 할 줄 모르는 나라라고 생각하기 전에, 내 손이 닿을 수 있는 책을 통해 세계의 정세를 공부해나갈 수는 있을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마음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또는 행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때가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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