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살아가기를

by 요가여니

친구에게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나 이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자세히 말하지 않았는데도 그 한 마디로 친구가 느끼는 절망감을 너무나도 잘 알 것 같았다. 친구는 힘들어하고 있었다. 갑자기 발생한 어떤 일이나 인간관계가 원인이 아니었다. 사는 것 자체에 지쳤다고 했다. 두려운 마음에, 친구를 힘들게 하는 제일 큰 원인인 것 같은 그 환경에서 제발 나오라고 부탁을 했다.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이 상태가 너무 오래돼서, 고착화 돼서, 힘들지 않은 하루가 어땠는지 기억도 안나. 변하고 싶지도 않은 것 같아."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그저 이렇게 반복해서 말할 뿐이었다. "뭐든지 일단 살아있는 게 제일 중요해. 알았어? 무슨 선택을 하든 쌍욕을 먹든 일단 살아있어야 된다고."



제목_없는_아트워크 (9).JPG

이제 사회생활을 활발히 하고 돈을 열심히 벌고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찬란할 것 같은 나이대에, 나는 좋은 소식보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아픔을 더 많이 듣게 되는 듯하다. 어렸을 때는 30대가 되면 삐까뻔쩍한 건물에서 좋은 옷을 입고 바쁘게 움직이는, 능력있고 열정적인 사회인이 되기를 예상하지 않았는가? 우리에게는 하나의 역할이 당연하게 주어질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거뜬히 해낼 것이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리라고 생각하지 막연히 생각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자리 잡아야" 하는 이 시기에 더욱 방황하고 눈물을 흘리고 좌절하고 심지어는 삶에 대한 의욕 마저 잃어버려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보게 된다. 그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아프고 내가 더 발을 동동거리게 되는 것은, 아마 내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힘들다' 그 한 마디를 뱉기까지 얼마나 많은 가슴앓이를 했을지, 남들도 다 힘들게 산다고 자신을 세뇌시키며 얼마나 많은 고비를 넘겨왔을지,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는 무력함과 패배감을 얼마나 힘들게 견디고 있을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지를, 듣지 않아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나와 비슷하게 힘들어 하는 이에게 '샤워를 하라'거나 '산책을 나가라'거나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고 잠을 충분히 자라' 같은 말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들에게는 지금 숨을 쉬고 있는 것 자체도 기적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샤워를 하고 운동을 하기 위해 일어날 힘조차 없다. 자신을 파괴하고 이 모든 것을 끝내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제하고 무사히 숨을 쉬고 그저 살아있는 것에 온 에너지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그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벅차다. 장기적인 계획을 짜거나 생활에 변화를 주는 것을 생각할 여력조차 없다. 액션을 취할 힘이 없고 생각이란 것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들은 그저 이 모든 상황이 끝나기만을 바란다. '나 대신 누군가가 이 고통을 끝내줬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러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걸어가다가 그냥 차에 치였으면 좋겠다고. 다음 생애에는 돌로 태어나고 싶다는 우스갯소리도 이와 비슷한 감정 아닐까.


내가 근무하던 직종에서는 고통을 이기지 못해 목숨을 스스로 끊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더 많아졌다. 그럴 때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그 용기로 그냥 그만두지. 직장이 뭐라고.' 틀린 말은 아니다. 그게 뭐라고 죽기까지 한단 말인가. 그러나 일을 그만두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일상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퇴사를 하려면 먼저 사직서를 써야 하고, 그러러면 사직서 양식을 받아야 하고, 또 그러러면 인사팀에 의사를 밝혀야 한다. 퇴사 의사를 밝히는 순간부터 갑자기 인사 혜택을 주겠다는 제안이 오고, 그것을 거절하고, 상사나 부서장에게 퇴사를 통보하고, 그들이 만류하는 것을 또 거절한다.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하는지 그들에게 납득을 시킨다. 실제로 퇴사일이 가까워져 오면 동료들과 한 번씩 밥을 먹으며 인사를 해야 하며, 일을 급하게 마무리하고 인수인계서도 정리해야 한다. 나를 갉아먹는 것에서 벗어나려면 이런 모든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이건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그 때까지 나는 계속 고통스러울 것이다. 지금은 아침에 눈을 뜨기도 힘들다. 주변에서는 내 고통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흔히 겪는 그런 스트레스로 치부한다. 견딜 수가 없다. 이들은 좀 더 '쉬운' 방법을 택한다. '그래도 어떻게 일 때문에 죽냐'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것이 더 쉬운 방법이었을 것이다.

퇴사를 예로 들었지만,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진 것 같은 절망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라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죽을 용기로 살라고 하고, 그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하고, 일이 힘들면 일을 그만두고 인간관계가 힘들면 관계를 끊으면 된다고 얘기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이 그들에게는 인생의 전부고, 그들은 이미 그 '전부'라는 것에 얻어 맞아 지칠대로 지쳤다. 그들은 오늘 아침 침대에서 일어날 힘조차 없다. 친구도 며칠 동안 하루 종일 누워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나에게 전화를 걸어주었다. 조금 남은 에너지를 나에게 이야기 하는 데 써주었다.


그러나 나도 친구에게 똑같은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너를 힘들게 하는 것에서 벗어나라고. 벗어나달라고. 그래야 네가 불행과 무기력에서 조금은 빠져나올 수 있고, 그래야 네가 살아있을 수 있기 때문에. 변화가 무서운 것도 알고 아무 힘도 없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시도해달라고. 무서운 것들이 많겠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있어달라고. 한 발자국을 떼기 어렵겠지만 발을 떼는 시도만으로도 나를 짓누르던 많은 것들이 신기하게도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고. 내가 하는 말들이 메아리처럼 허공에 떠돌고 친구에게 닿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반복해서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살아보자고.

부디 살아가기를 바란다. 남들에게는 별일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그것으로 아파하고 고통받는 자들이 부디 잘 살아가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들은 잘 버티는 것 같아 힘들다고 이야기도 못하고 끙끙 앓고 있는 자들이 부디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나에게 전부인 것 같아 보이는 것을 눈 딱 감고 한 번 버려보길 바란다. 어차피 힘든데, 내가 생각지도 못한 선택을 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는 보는 게 덜 억울하지 않은가.


keyword
작가의 이전글중동 국가의 가혹한 동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