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탕가 요가를 할 때 제일 부담이 되는 자세가 있다. 그 이름부터가 자세를 시도하기가 두려워지는데, 그 자세는 바로 우티타 하스타 파당구쉬타나사이다. 아휴, 이름도 길다. 아쉬탕가 요가는 동작의 정확성과 순서가 모두 정해져 있는데, 이 우티타 하스타 파당구쉬타나사라는 자세는 1시간 수련을 기준으로 했을 때 1/3 지점에 등장한다. 아쉬탕가 수련을 꾸준히 하는 사람이라면 으레 이 자세를 들어가기 직전이면 비장해지기 시작하고, 가끔은 리드를 해주시는 선생님께서도 "자, 침착하게. 안돼도 계속 시도하세요."라는 말을 덧붙이시기도 한다. 이 차례를 넘기면 '아, 숙제 하나 끝냈다'하고 남은 수련은 비교적 마음 편하게 진행할 수 있을 만큼 쉽지 않은 동작인 것이다.
'우티타'는 쭉 뻗은, '하스타'는 손, '파당구쉬타'는 엄지발가락으로, 한쪽 다리로 서서 반대쪽 다리의 엄지발가락을 손으로 잡은 채 들어 올려 균형을 잡는 동작이며, 공중에 떠 있는 다리를 옆으로 벌리기도 하고 앞으로 가져와 몸으로 당겨 이마에 맞대기도 하는 것인데, 상체와 다리 한 짝이 위에서 정신없이 움직이는 와중에 바닥에 붙은 다리가 이 모든 과정을 지탱해야 하는 아주 잔인한 자세라 할 수 있다. 그런데 n년차 요가 수련자이자 요가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인데도, 부끄럽게도 나는 아직도 이 자세를 잘 해내지 못한다. 컨디션이 아주 좋은 날은 내 마음에도 찰 만큼 견고하게 해내지만, 대부분의 날들의 나는 한쪽 다리를 드는 순간부터 몸 전체가 흔들리고 상체가 바로 펴지지도 않고 시선을 제대로 두지도 못하며 계속 넘어지기 일쑤이다. 아슬아슬하게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가도 조금만 방심하면 몸이 기우뚱하면서 금세 중심을 잃어버린다. 생각해보면 지금보다 아무것도 모르던 초보 요가 수련자였을 때 더 자세를 잘 소화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떤 날은 한쪽 다리로 서는 것 자체가 안 되는 날도 있으니, 어디 가서 요가 오래 했다고 명함 내밀기도 부끄럽기도 하다.
'우티타 하스타 파당구쉬타사나' 자세를 예로 들었지만 아쉬탕가 요가의 대부분의 과정이 비슷하다. 눈에 띄게 늘지를 않는다. 아쉬탕가 수련을 할 때면 매번 자세의 정렬이 어딘가 조금씩 틀리고, 매번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매번 겨우 겨우 수업을 쫓아가고, 매번 허우적거린다. 수련을 할 때마다 나의 모습은 그대로다. 어떤 날은 역량이 다시 되돌아간 것 같기도 하다. 요가를 하며 해방감을 느끼는 나이지만, 아쉬탕가 수련을 대하는 마음은 조금 다르다. 가기가 싫다. 의무감으로 가긴 하지만 '오늘도 얼마나 버둥대고 넘어질까' 생각하면 수련이 시작하기도 전에 1시간이 얼른 지나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 그러나 이 요가의 잔인한 매력이여. 하고 싶지 않다고 느낄 때, 그 순간에, 요가는 나에게 달콤한 열매를 준다. 기대 없이 임한 수련에서 나는 어느새 다리를 견고하게 뻗고 균형을 잡는다. 몸이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발바닥이 바닥에서 뜰락 말락 하다가도 어느 날은 바닥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발바닥이 단단하게 몸을 지탱해준다. 상체는 꼿꼿하게 펴지고, 손가락은 엄지발가락을 강하게 당기고 있고, 허벅지 근육도 내 다리를 거뜬하게 들어 올린다. 기분이 짜릿하다. 한층 더 성장한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한다. 그러나 이 달콤한 열매를 맛보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바로 계속 수련에 나오기. 다른 말로 하면, 존버. 버티기. 수련이 잘 안 돼도, 매번 넘어져고, 성장하지 않고 변화하지 않는 것 같아도 계속 수련하기. 학생 때 수학이라는 과목은 계단식으로 는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이 요가라는 놈도 똑같은 것이었다. 그저 존버하는 것. 달라지는 게 없는 것 같더라도 그저 매트 위에 나와 수련하는 것. 엉망진창으로 할 것을 알면서도 그 자리를 지키는 것. 그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가끔 선물처럼 오는 짜릿한 기분은 영영 느낄 수가 없다.
요가 수련과 마찬가지로 나의 일상에도 드라마틱한 변화가 오기에는 마냥 요원해 보인다. 내가 하는 것들에 자신이 없어지고 내 역량에 비해 너무 큰 것을 꿈꿨나 싶기도 하다. 세상에는 너무나도 대단한 사람들과 닮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 매일 나는 나의 보잘것없음과 부족함을 확인한다. 아마 내가 목표하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고, 여전히 수입은 불안정하다. 결국 잘 안 될 것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할 수밖에 없는 지금 나는 어떻게 마음을 다잡아야 할까 고민하는 나에게, 요가는 '우티타 하스타 파당구쉬타사나'를 기억하게 한다. 수련을 잘 해내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매트 위에 서는 나의 모습과 마음가짐을, 요가는 나에게 상기시킨다. '늘지 않아도 된다, 자리를 지키기만 하면 된다'고 거의 나 자신을 세뇌시키듯 되뇌었던 마음을 기억하라고, 요가는 나에게 말한다. 버티라고. 존버하라고.
내일도 나는 펜을 들 것이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쓸 것이다. 아무도 보지 않을 것만 같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은, 분명 넘어질 것을 알면서도 매트 위에 서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만, 그러나 내일도 하련다. 모레도 해야 한다. 계단식으로 올라갈지 아니면 그냥 한 계단에만 쭉 머무르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일단 계단의 턱까지는 가 봐야 알 것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도 아쉬탕가 요가는 출석하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