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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여니 Aug 08. 2022

정신 차려,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사례 1.

  친구 H는 회사에서 사수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다. H의 사수는 H와 직급이 세 계단이나 차이가 나는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누가 봐도 H보다 업무 능력이 높을 것 같지만 업무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H에게는 짐이 되고 있다. 그 사수는 항상 모르쇠로 일관하며 업무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아 H에게 과도하게 업무가 몰리는 경향이 있으며, H가 업무 때문에 곤란한 상황이 생겨도 동료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H를 질책하고 H에게 책임을 묻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H의 고민은 일이 많다는 사실보다 부당한 일이 발생하는 순간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는데,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저는 이런 거 못해요", "이런 건 H님이 하는 거죠"라는 말로 업무를 떠넘기는 사수 앞에서 H는 이상함을 느끼면서도 한 마디도 하지 못했는데, 집에 와서 자려고 누우면 그때의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와 뒤늦게 분통을 터뜨리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나는 논리적인 말들이 왜 그때에는 떠오르지 않았는지. 매번 상황이 벌어지는 그 순간에 항의를 하고 싶은데 그때는 입도 뻥끗할 수 없다가 꼭 침대에 누우면 씩씩거리다가 H는 답답함에 잠이 들었다. 게다가 사수가 '이런 건 보통 아랫사람이 처리하는 일이다'라거나 'H가 만든 보고서인데 내가 자료를 수정하면 더 엉망이 될 것 같아서 건드리지 못했다'는, 어떻게 들으면 그럴싸한 말로 H를 구슬렸는데, H는 한 켠에서는 이상함을 느끼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끄덕이며 어느새 업무를 제 손으로, 그것도 아주 열심히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사례 2. 

  친구 S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 사람은 대학 시절 힘들어하던 자신을 잘 챙겨줬던 선배였는데, 한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최근 S에게 3백만 원을 빌려달라고 연락을 해 왔다. 처음에는 S는 어처구니없는 부탁이라고 생각을 했다. 게다가 S에게는 3백만 원이 없었다. S도 부업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충당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생각을 하면 할수록 S는 자기가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마련해서 빌려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선배는 자신의 어려움이 일시적인 상황임을 강조하며 바로 갚겠다며 S를 안심시키려 했고, 선배와의 대화를 계속해나갈수록 S는 대학 시절 자신을 도와줬던 선배의 모습이 떠올랐다. '선배가 있어서 난 그 시절을 버틸 수 있었는데.' S는 빌려주겠다는 답은 주지 않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직장에서 당장 받을 수 있는 돈이 얼마인지, 심지어는 자기가 은행에서 받을 수 있는 대출은 얼마인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선배가 다음 달에 바로 갚을 수 있대."라고 S는 나에게 설명했다. S는 가까운 사람끼리 돈거래는 신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자꾸만 그 선배가 신경 쓰여 단호하게 거절할 수 없었다. S는 이 순간이 자기가 단호해져야 하는 순간인지 아니면 주변 사람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말아야 하는 순간인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두 친구 모두 나에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왔고, 나는 바로 이렇게 내뱉었다. "정신 차려." 너무나도 명확한 일이었다. H는 사수가 일을 떠넘기려고 할 때 그 일을 해주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S는 돈을 안 빌려주면 되는 것이다. 왜 당하고만 있지? 왜 안절부절못하고 있지? 친구들이 뭔가를 잘못했다거나 친구들이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게 아닌 것이 명백한 상황인데도, 친구들은 '내가 이상한 걸까?', '내가 이렇게 느끼거나 행동하면 나쁜 걸까?' 하며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일을 떠넘기는 사람, 갑자기 연락이 와서 무작정 돈을 빌려달라는 그 사람이 무례한 건데도 친구들은 자신의 기분을 검열했고 자신에게 문제는 없었는지 생각했다. 답답했다. 이렇게 쉬운 문제를 가지고 왜 고민하는 걸까. 그들은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  




  그런데 사실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제삼자에게는 너무나도 명확해 보이는 것이 당사자에게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겪는 문제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사람과 갈등을 겪는다. 처음 본 사람이 무리한 부탁을 하거나 무례한 행동을 하면 화를 내기가 어렵지 않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과 경험이 쌓여 형성된 관계에 있는 사람이 똑같은 행동을 했을 때는 우리는 그것을 거부하기가 어렵다. 거부하기는커녕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판단도 하지 못한다. 

  게다가 이런 경우에 그 공격은 일차원적으로 오지 않는다. 나는 일하기 싫으니까 네가 해, 라는 공격은 '내가 좀 바빠서.. ㅇㅇ님이 이것만 좀 해주면 안 될까? 부탁 좀 할게.'라는 말로 포장된다. 돈 좀 빌려줘, 라는 공격은 '내가 지금 급해서 그런데 얼마 좀 보내줄 수 있어? 내가 내일 바로 줄게.'와 같은 말로 정체를 감춘다. 남이 들으면 황당해서 코웃음 칠 궤변이 당사자에게는 그럴듯하게 들린다. 맞는 말 같다. 마음속에 뭔가 걸리지만 내가 반대 의견을 내면 상황이 더 이상해질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그 상황을 거부하지 못한다. 그 상황에 휩쓸린다. 시간이 지나면 궤변의 포장이 벗겨지고 우리는 그제야 생각한다. "내가 왜 그랬지?!" 그리고 이 얘기를 듣는 제삼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멍청아."



  그러므로 우리는 말도 안 되는 것으로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함부로 손가락질을 할 수 없다. 나를 힘들게 하는 궤변은 <이것은 억지 논리임>이라고 보이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합리적인 주장이라 반박하는 네가 나쁜 사람임>이라는 표식을 달고 우리에게 온다. 우리가 남의 입장에 서 있을 때는 쉽게 판단할 수 있지만 당사자라면 판단할 수 없다. 어느새 눈을 떠보면 우리는 그 궤변에 넘어가 내가 하지 않아도 될 행동들을 하고 내가 받지 않아도 될 대접을 받고 있다. 

  그러니 일찍이 무한도전이 말했다. "정신차려,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궤변이 궤변임을 알아볼 수 있도록 정신을 차리자. 부당한 것이 부당한 것임을 알아차리고, 내가 반대 의견을 낸다고 해도 내가 거절하고 거부한다고 해도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건 아님을 인지하자. 왜 사람을 이용하는 교활한 사람들이 아니라 당하는 사람들이 조심해야 하는가, 억울하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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