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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여니 Aug 18. 2022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보통 다른 사람들 일에 개입을 하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 일에 상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제는 이상한 날이었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 피곤함에 주전부리가 생각나 편의점에 들렀다. 이것저것을 골라 계산대에 내려놓았는데, 앞에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어린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아이가 아마 부모님께 카드를 받아서 과자를 사러 온 모양이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아이에게 받은 카드를 가지고 계산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카드가 잘 안 긁히는지 아르바이트생은 한숨을 푹푹 쉬며 계속 혼잣말로 짜증을 냈다.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보다가도 "에이씨, 이거 왜 이래." "카드가 이상한 거 같은데." 하면서 나에게도 들릴 정도로 툴툴댔다. 그 짜증은 당연히 앞에 서 있던 아이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됐고 아이는 아르바이트생 눈치만 보고 있었다.

 

결국 결제를 포기한 아르바이트생은 대뜸 아이에게 이렇게 날카롭게 말했다. "이거 결제가 안 되는데요? 다른 거 없어요? 이거 신용카드 맞아요?" 

아이에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게 안 되는 것 같은데, 부모님께 한번 전화해서 여쭤볼래?' 같은 말로 부드럽게 말할 수는 없었을까? 아이가 부모님께 받은 카드가 신용카든지 체크카든지 무슨 카든지 알게 뭔가. 아이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아르바이트생은 계속 "이거 안 된다고요. 다른 거 없어요? 이거 계산 못해요." 하면서 아이를 재촉했다. 초등학생을 성인 대하듯이 했다. 아이는 당황했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서 있었다. 안쓰러웠다. 고작 과자 하나를 놓고 카드를 흔들어대는 아르바이트생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인 아이를 보며 나는 괜스레 마음을 졸였다.


그 아이는 결국 비켜섰고, 아르바이트생에게 카드를 받아 구석으로 가 카드를 괜히 이리저리 살펴보기도 하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계산이 끝난 나는 나가려고 문 쪽으로 다가갔는데, 옆에서 움츠리고 있는 아이가 아무래도 눈에 밟혀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발걸음이 떼어지지가 않는다는 말이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결국 나는 아이에게 말을 걸고 말았다. 

"아줌마가 아까 그거 사줄게. 어때?" 아이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괜찮은데.."라고 했지만, 나는 "괜찮아, 내가 사주고 싶어서 그래."라고 하고 아르바이트생에게 방금 전 그 과자를 계산해달라고 말했다. 그깟 과자 하나 얼마나 한다고, 사주면 어떤가. 커피 한 잔을 위해 5,000원을 쉽게 쓰는 나라면, 과자 한 개 때문에 마음이 상한 아이를 위해서 이 정도는 얼마든지 쓸 수 있다. 다만, 얼마 안 할 줄 알았던 초콜릿 과자 하나가 2,000원이나 해 속으로 조금 놀라긴 했지만 말이다. 얼떨결에 과자를 받아 든 아이는 나에게 감사하다고 꾸벅 인사를 했다. 이런 적이 처음이라 왠지 민망해진 나는 맛있게 먹으라는 말을 뱉고는 재빨리 문을 열고 편의점을 나왔다. 


괜한 짓을 한 걸까? 아이가 기분 나빠하지는 않았을까? 부모님한테 혼나지는 않을까? 부모가 뭐 그런 사람이 다 있냐고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까? 집에 가면서 온갖 생각을 했다. 남의 일에 상관하는 것이 조심스러운 요즘, 괜한 오지랖을 부린 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것이 나에게는 최선이었다고 결론을 지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구석에서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움츠러들어 있던 아이의 모습이 집에 와서도 계속 눈앞에 어른거렸을 것이다. 아이의 놀란 마음이 걱정돼 계속 마음이 쓰였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 어쩌면 다른 사람을 위해 나서는 사람의 마음이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대단한 결심을 한다기보다는 내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그런 비슷한 것 말이다.


친구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모르는 '사람'에 동물이나 아이 같이 아직 성인의 때가 묻지 않은 약한 것들은 포함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맞는 말이지만 나는 부끄럽게도 약한 것을 위해 행동한 적이 없었다. 거의 처음이었다. "아까 그거 사줄게, 어때?" 처음으로 입을 떼었다. 처음으로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옳은 행동을 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한 번 해봤으니 다음은 덜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날 신경 쓰지 않고 내가 작은 존재라고 느껴질 때, 손을 먼저 내어주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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