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아들과 오아시스

- 어느 휴일 오후의 음악

by 연잎


아들이 화장실에서 휘파람 부는 소리가 들렸다.

오아시스의 ‘돈 룩백 인 앵거’(굳이 영어로 쓰고 싶지 않다).


거실 탁자에 앉아 그 휘파람 소리를 들으며 나도 같이 흥얼거렸다.

아들과 같은 노래를 같이 좋아하며 같이 흥얼거리는 이 오후의 시간.

이 아름다운 순간은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가?


이 행복한 순간은 많은 주변 요소들의 합작품이다.

이 곡이 아들이 활동하고 있는 동아리 밴드의 다음 합주 음악이라는 것, 내가 오아시스를 알고 있다는 것,

무엇보다 아들과 내가 이 오후의 시간을 집 안에서 함께 했다는 것 등.

그러나 무엇보다 이 음악이 있었다는 것이 가장 먼저다.


이 행복의 기초를 만든 이는 노엘 갤러거, 리암 갤러거, 그리고 밴드 오아시스이다.

나는 오아시스를 들으면 항상 노엘과 리암의 어린 시절 이야기들을 떠올린다.

내가 아들만 둘이라서는 아닐 것이다.


갤러거 형제는 80년대 영국에 심각한 불황이 닥쳤던 시절 맨체스터의 어느 빈민가에서 나고 자랐다.

아버지는 일용직 노동자이자 알코올 중독자이자 가정 폭력의 가해자였다.

노엘이 아버지한테 심하게 맞아 길에서 정신을 잃은 적도 있다고 한다.


노엘이 천재였기에 진흙 속에서도 꽃을 피운 것인지, 노엘에게 기타가 있었고 아무도 음악을 가르쳐주지 않아서 오히려 가장 노엘다운 음악을 만들 수 있었는지, 혹은 노엘이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 큰 고통을 겪었기에 음악으로 스스로를, 그리고 인간을 위로하는 방법을 일찌감치 깨친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의견은 분분하다.


노엘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그렇게 불우하게 기억하지는 않는다. 10대 초반부터 마약에 절어 살았지만, 그땐 동네 아이들이 다 그랬고, 자기는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또 무슨 재미있는 일들이 있을까’ 기대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이 모든 것이 작용한 것이지 싶다. 심지어 마약까지도.


어쨌거나 1980년대 영국 빈민가에서 자란 노엘이 만든 음악이 2020년 한국 경기도 어느 작은 도시에서 50대와 20대 모자의 일요일 오후 3시를 충만한 행복으로 채워주고 있다.


나는 이런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나보다 더 힘들었으면서 지금의 나에게 아름다운 음악과 영화와 그림과 이야기와 시를 남겨준 사람들. 세상은 이들을 통칭하여 예술가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예술가라고 퉁쳐서 말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들이 말하는 예술가들 중에는 나에게 별다른 행복을 주지 않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나에게 영감을 주는 이들을 친구라고 말하고 싶다. 나의 친구들. 그들은 내가 자신의 친구가 될 줄 몰랐을 것이나, 세상에 자신의 작품을 남긴 사람이 그 작품을 좋아할 사람을 스스로 골라낼 수는 없다. 이것은 그들의 운명이다. 설령 연쇄 살인마가 살인 행위의 BGM으로 비틀스의 ‘렛잇비’를 골랐다 할지라도 비틀스 본인들이 거부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하물며 이 작은 도시의 평범한 아줌마가 당신들을 친구라고 부른 들 뭐 그리 이상할 것은 없지 않습니까?


나의 친구 오아시스. 노엘과 리암 갤러거 형제. 애틋하지만 멋진 내 친구들.

심지어 이들은 지금 이 시대를 같이 살고 있기도 하다. 언젠가는 나를 만나러(?!) 한국에 또 올 수도 있다. 그렇다면 기꺼이 만나러 가야지. 낙타 구멍 통과하기보다 힘들다는 공연 티켓팅에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노엘. 당신 마음에 동의합니다.

리암과 죽을 때까지 함께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우애 총량의 법칙이 있어요. 당신과 리암은 다른 형제들보다 몇 배 더 가까이 지내며 지지고 볶았으니, 그거면 됐어요. 그냥 지난 일은 흘려보내요. 당신 말이 맞아. 그냥 살아요. 지금 그대로 각자 자신의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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