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WALK

- Micheal Jackson. 1988.

by 연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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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WALK by Micheal Jackson. 1988.

- 내가 처음으로 완독 한 영어 원서.


마이클 잭슨(MJ)
- 1958년 8월 29일 ∽ 2009년 6월 25일. 미국.
- 공식 데뷔 1969년 잭슨파이브 1집 앨범 [Diana Ross Presents The Jackson 5]



1. 마이클 잭슨은 알지도 몰라.


무엇을? 대한민국 경기도 구석에 사는 나이 든 아줌마가 지금도 자기를 가끔 생각한다는 것. 그의 전성기 시절 더 좋아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고, 그를 둘러싼 스캔들에 귀를 열었던 것을 후회하고 있다는 것을.

알 리가 없다고? 아니, 모를 리가 없지. 왜냐면 진심은 통하니까.

그가 가졌던 진심이 세상 어느 구석에서 다시 이해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더 이상하니까. 지금 여기 말고 상하이의 어느 변두리, 남프랑스 어느 작은 집, 페루의 시골 어딘가에서도 지금 마이클 잭슨의 진심을 다시금 느끼는 누군가가 존재할 것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마이클 잭슨인 것이지.


나는 마이클 잭슨을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 눈물의 직접적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슬프다. 인간이 아무리 모든 것을 가진 듯 살았어도 죽음 앞에서는 헐벗고 초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약의 늪에 빠져 죽어갈 때의 외로움과 억울함이 느껴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 이도 저도 아니다. 그냥 슬프다.

마이클 잭슨은 1958년에 태어나 1969년에 데뷔했다. 나는 1969년에 태어났다. 마이클이 자서전을 낸 것은 1988년, 서른 살의 나이였다. 이때 나는 스무 살, 재수를 하고 있었다. 그때 마이클 잭슨이 자서전을 출간했다는 뉴스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못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들었다 해도 읽어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내 맘 깊은 곳에는 그가 자서전을 자기가 직접 썼을 리 없다, 전문 작가가 써줬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자기가 얼마나 성공했는지에 대한 자화자찬으로 채워진 것이려니 하는 생각도 있었다. 비단 나만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마이클은 흑인답게 춤 하나 기깔나게 추는 팝스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대학 시절 반미 의식이 자라면서 마이클잭슨 같은 지극히 미국적인 팝 음악에는 애써 관심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를 잊어갔다. 이후 그에 대해 전해지는 소식은 매우 부정적인 것들이었다. 백인 흉내 내려고 피부를 갈아엎었다, 성형 중독으로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약물 중독이다 등에서, 결국 말하기도 민망한 아동 성추행 소송까지 날이 갈수록 그의 이미지는 실추되어갔다.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주로 전해지는 소식이 다 저런 것들이니 그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애써 유지하기도 힘든 시기였다.

그러던 2009년 어느 날 그는 죽었다. 당시 그의 사진을 보면 언제든 죽을 것처럼 거의 바스러진 느낌, 무너져 내린 느낌이 강하게 온다. 그러고도 10년이 지나 나는 이 책을 읽게 되었고,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내가 얼마나 그를 오해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2. 마이클이 직접 쓴 것이 분명하다


도서관에 일주일에 3번 이상 가고, 한 번 가면 3시간 이상을 보냈던 시절이 있었다. 도착하면 먼저 빌렸던 책을 반납하고 새로 빌릴 책들을 찾았다. 책을 찾아 서가를 뒤지다 보면 예정에는 없지만 시선을 끄는 책들이 있다. 그런 책들도 다 뽑아와서 자리에 앉아 목차부터 전체적인 내용을 죽 훑는다. 그러다 보면 판단이 된다. 빌려 가서 계속 읽을 책인지 그냥 둘 책인지. 그렇게 거의 매일 1권 이상을 읽었던 시절이었다.


그때 무심코 영어 원서 서가에 눈길이 갔고 ‘MOONWALK’라는 제목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1988년에 출간된 마이클 잭슨의 자서전이었다. 영어와 담을 쌓은 지는 오래지만 한번 펼쳐보았다. 첫 페이지가 읽혔다. 그냥 쓰윽 읽히면서 이해가 되었다. 모르는 단어가 몇 있었지만 문맥으로 유추가 가능했다. 신기했다. 빌리기로 했다. 집에 가져와 사흘에 걸쳐 다 읽었다.


어린 시절 형들과 했던 클럽 무대 활동부터 잭슨파이브 활동, 처음으로 작곡한 곡인 ‘벤’, 오즈의 마법사 출연, 솔로 데뷔와 그 이후 시그니처 안무인 문워크를 빌리진 안무로 짜게 된 과정, 스릴러 음반과 뮤비 제작 과정 등이 마이클 자신의 입장에서 서술되어 있었다. 재미있고 실감 나게 서술되어 술술 읽혔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책을 덮을 때 나는 마이클을 아주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


이 책, 마이클이 직접 쓴 것이 분명하다.

전문 작가가 써줬을 것이라고 의심했던 것이 미안했다.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마이클 자신이 진심을 담아 자신의 언어로 쓴 글임이 분명하다. 그러하기에 내가 이 책을 완독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휘가 평이하다. 쉽고 간결한 어휘와 간결한 문장 구조를 사용했다. 그래서 나처럼 영어와 담쌓은 사람도 읽어내기 어렵지 않았다. 나는 영어를 안 한 지 30년이 됐다. 지금 토플 시험을 보면 아마도 40점 이하가 나올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 이해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다음은 어린 시절 클럽 공연 다닌 시절을 회상한 내용이다.


Most of the time I′d be alone backstage. My brothers would be upstairs eating and talking and I′d be down in the wings, crouching real low, holding on to the dusty, smelly curtain and watching the show. I mean, I really did watch every step, every move, every twist, every turn, every grind, every emotion, every light move. That was my education and my recreation. I was always there when had free time.


정말 쉽고 간결하고 솔직하지 않은가.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것을 느꼈다. 무대 뒤 커튼 사이에 숨어서 무대를 샅샅이 훑으며 모든 스텝과 움직임, 트위스트와 턴, 모든 감성과 빛의 움직임까지, 전체를 읽고 파악하는 어린 팝 황제, 겨우 7살 마이클의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이 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눈으로는 현재의 무대를 보고 있지만 머리로는 미래 언젠가 하게 될 자신의 무대를 설계하고 있었을 어린 마이클이 눈에 선하게 떠올라 내 심장까지 마구 나댄 것이다. 이렇게 쉬운 단어와 이렇게 쉬운 문장 구조로 이런 설렘과 감동을 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마이클의 능력이다. 이런 마이클이기에 그 많은 명곡들을 써낼 수 있었던 것이다.



3. 모타운, 디트로이트.


마이클 잭슨의 고향 디트로이트. 자동차 공장이 많아서 모토타운(모타운)이라는 별칭이 있는 도시이다. (디트로이트에 대해서는 영화 ‘디트로이트’와 ‘노예 12년’, 휘트니의 어린 시절 등과 연결하여 할 말이 많지만 다음 기회에.) 자동차 공장이 많으니 당연 남자 노동자도 많았다. 현대중공업 노동자의 태반이 남자이듯, 당시 디트로이트 자동차 공장의 노동자 대부분은 남자였고, 또 당연하게도 그 대부분이 흑인이었다. 마이클의 아버지도 공장 노동자이면서 악기 연주도 하는 사람이었다.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돈을 벌어야 했기에 공장 노동자도 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아버지의 피를 받은 잭슨의 형제자매들은 모두 음악에 소질이 있었다. 잭슨의 아버지는 폭력적이고 가부장적이었다. 마이클과 그 형제들은 온갖 언어폭력과 물리적 폭력에 시달리며 자랐다고 한다. 자식들을 싸구려 밤무대에 올려 그 재능으로 돈을 벌기도 했다. 심지어 스트립 클럽 공연까지 시켰는데 당시 마이클의 나이는 겨우 7살이었다. 아버지와 형들은 공연을 마치고 온갖 항락도 즐겼으나 마이클은 그런 쪽으로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고 한다. 앞의 인용문에서처럼 큰 포부를 가진 새끼 사자였던 것이다. 어쨌거나.... 그 아버지는 아들들의 재능을 세상에 알리는 데에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이렇게 차츰 명성을 쌓아가다가 ‘잭슨파이브’라는 이름으로 5형제가 모타운이라는 레이블에서 첫 음반을 낸 것이 1969년이고 당시 마이클은 12살짜리 막내였다. 그리고 이 음반은 빅히트. 빌보드에 연속 1위를 하였고 잭슨파이브는 전 미국 최고의 인기 그룹이 되었다.


당시의 영상을 보면 마이클이 비록 막내지만 팀의 중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작은 막내가 절도 있는 춤에 아직 사춘기가 지나지 않아 가늘고 청아한 미성을 뽑아내며 공연하는 장면을 보면 보통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어 당시 흑인 디바였던 다이애나 로스의 후원으로 마이클은 꽃길을 걷기 시작한다. 잭슨파이브 시절부터 이미 톱스타였으니 솔로 데뷔는 시간문제였다. 어린 마이클이 작사, 작곡한 곡 ‘벤’,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그 서정적인 멜로디와 청아한 음색을 떠올려보자. 그가 어찌 톱스타가 아닐 수 있을까?


4. 와신상담 – 복수는 이렇게 하는 것.


그렇다고 마이클이 꽃길만 걸은 것은 아니다. 퀸시 존스와 작업한 첫 음반 ‘Off The Wall’이 빅히트를 쳤고, 음악적 완성도 또한 높아서 모두들 그래미 다수 수상을 예상했지만 마이클에게 돌아온 상은 딸랑 R&B 남자 보컬상 하나였다. 이 앨범은 미국에서만 800만 장, 전 세계 2,000만 장이 팔렸음에도 마이클은 롤링스톤지 표지 한번 장식하지 못했다. 당시 미국 대중음악계에 만연했던 인종 차별을 그 이유이다. 앨범 제목과 달리 마이클은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마이클이 이런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절치부심, 와신상담. 그들의 이런 견제는 결국 천재에게 오기까지 더해주는 격이 되었다. 이후 4년 동안 칼을 갈며 음반을 준비한다. 세상이 깜작 놀랄, 상을 주지 않을 수 없는 명곡을 만들어 이 치욕을 갚아주리라! 음악적 스승 퀸시 존스는 물론, 폴 매카트니와 협업하는 등 온갖 실력자들을 대거 영입하여 마이클 특유의 완벽주의 작업 방식을 극한으로 몰아가며 작업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탄생한 음반이 바로 인류 역사상 길이 남을 ‘Thriller’이다.


마이클은 음반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바야흐로 MTV 시대. 한 편의 영화 같은 뮤비로 뮤직비디오의 새 역사를 쓰기도 했다. ‘Beat It’에는 실제 거리의 춤꾼들을 대거 등장시켰다. ‘Thriller’의 경우 음악 자체는 6분인데 뮤비는 14분이다. 작정하고 찍은 단편영화인 셈이다. 그해 ‘Thriller’는 베스트 앨범, 베스트 싱글 등 그래미 8관왕을 먹으며 마이클은 4년 전의 굴욕을 보란 듯이 갚아주며 명실공히 황제로 군림하게 되었다. 물론 롤링스톤지 표지도 먹어버렸다. 그야말로 그냥 찢 었 다.


더 있다. 앨범과 뮤비만이 전설이 아니다. 공연에서 또한 새 역사를 쓴 것이다. 무대 뒤에서 점프하듯 튀어 올라 등장하기, 문워크・린댄스 등 눈알 튀어나올 만큼 겁나 멋진 춤들, 뮤지컬 스타일 액팅과 연출, 건물 신축급 무대장치 등 지금도 자주 보기 힘든 퍼포먼스들이 마이클의 공연에서는 매번 펼쳐졌다. 단순히 돈이 많다고 가능한 무대가 아니다. 모든 무대를 완벽하게 연출하고 아티스트가 열정을 쏟아내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모든 투어가 다 어마무시했지만, 짧고 굵은 거로 딱 하나만 꼽는다면 역대급 중 역대급인 1993년 슈퍼볼 개막 공연을 추천한다.



4. 두 말 필요 없는 빌리진


내가 마이클을 처음 접한 것은, 내 나이 사람 누구나 그렇듯 ‘빌리진’이라는 곡과 보는 순간 시선을 뗄 수 없었던 그 춤, ‘문워크’였다. 중1 때였을 것이다. 그때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움직일 수가 있는가?" 그때 그 춤을 흉내 내지 않은 10대는 없었을 것이다. 나도 남몰래 방에서 연습은 해봤다. 10번쯤 해보고 때려치웠다. 이것은 내가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부터 춤과는 담을 쌓았다. 나와는 다른 세계이다.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는 문워크를 할 수 있는 아이와 할 수 없는 아이가 있었다. 문워크를 하면 무조건 춤짱이 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문워크는 보기보다 어려운 춤이라서 연습한다고 되지도 않고 됐다가도 어느 날 스텝이 꼬인다. 그때 당시 문워크가 되던 사람은 지금도 될 것이고 그때 당시 문워크가 안 되던 사람은 지금도 안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문워크가 댄스 피플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기준이 되는 것이 맞긴 하다.


마이클이 이 안무를 짠 이야기도 이 책에 상세히 기록되어있다. 1983년 5월 모타운 30주년*(* 자서전에는 25주년이라고 되어있고, 유튜브나 인터넷 검색으로는 30주년으로 되어있음. 30주년이 맞고 마이클이 착각한 것 같음.) 기념 무대 하루 전날, 자기 집 부엌에서 그는 드디어 안무를 완성했다. 당시 거리에서 소년들 사이에 유행하던 기본 문워크에 손과 골반의 움직임, 마이클 특유의 360도 다회전 턴을 섞은 안무를 자기 집 부엌(kitchen)에서 고안한 것이다.


다음날 모타운 무대에서 빌리진에 맞춰 문워크를 시연한 후, 팝의 새 역사가 시작되었다. 마이클의 이 무대는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의 확실한 전환을 보여주는 것이었고, 무대 안무의 최상급을 보여주는 것이었고, 황제의 통치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이날 공연 이후 프레드 아스테어로부터 ‘넌 진짜 the hell of mover’라는 극찬의 전화를 받았고, 진 켈리는 자기 집으로 직접 찾아오기까지 했다면서 기분 완전 째진다고 자서전 214쪽부터 두 페이지에 걸쳐 수다스럽게 자랑을 늘어놓고 있다. 귀여운 마이클.



5. 외롭고 또 외로웠던 황제의 죽음


마이클이 50을 겨우 넘기고 죽었다는 것이 충격적일 이유는 없다. 요절한 천재 아티스트가 한둘이 아니다. 커트 코베인은 27세에 죽었고 휘트니 휴스턴도 50을 한 해 앞두고 49세에 죽었다. 마이클도 커트 코베인과 휘트니처럼 약을 했는지 안 했는지 나는 모르겠다. 공식적인 사망 원인이 프로포폴 과다 투여이지만 그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진짜라면 왜 과다 투여를 하게 되었는지는 본인만이 알 것이다. 각종 수술과 정신적 우울 때문에 약물 없이는 단 10분도 잘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당시 주치의가 2급 살인죄로 유죄 판결을 받긴 했지만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것을 우리가 각자의 추측으로 이것이다 저것이다 판단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는 죽었을 뿐이고 죽은 자의 입을 열게 할 방법은 없다. 다만 마이클의 마지막 몇 년은 재판과 질병과 투약으로 점철되었다는 것이다.


마이클 자신은 여한이 없을 수도 있다. 그는 살아서 자신의 꿈을 다 이뤘을 것이다. 11세 나이부터 일찌감치 톱스타의 대열에 올랐고, 타고난 재능과 특유의 완벽주의로 서른도 되기 전에 팝의 역사를 다시 쓰면서 월드스타가 되었다. 음악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기 마음껏 능력을 펼쳤다.


내가 재수하느라 중림동 학원 지하 교실에서 문제집과 씨름하고 있을 때 그는 자서전을 냈다. 이미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꿈꿀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룬 것 아닐까? 그러나 그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더 나아갔다. 더 나은 곡을 쓰고 더 멋진 무대를 꾸미는 데에 완성은 없는 것이니까. 그는 죽음 직전까지도 음악 활동을 했고 공연도 계획했다. 절정기를 한참 지난 중년의 팝스타로서 갈 수 있는 길을 걸어가던 중이었다. 각종 스캔들과 재판이 그의 영혼을 갉아먹었겠지만 그는 계속 걸어가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멈춰버렸다. 본인의 청에 의한 타살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주치의의 손에 죽음에 이른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전 세계가 들끓었다. 그는 죽음마저도 최고의 관심과 집중을 받았다. 최고의 추도를 받았다. 각국 대통령의 조문은 물론이었다. 우리의 김대중 대통령도 추도사를 보냈다. 이런 그의 삶에 무슨 여한이 있겠는가. 어느 누가 그와 같은 삶을 살다 갈 수 있겠는가. 전무후무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는 삶과 죽음 모두 최고 중의 최고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그가 없는 지금, 그의 부재는 곧 우리 세대의 종말을 보여주는 것 같다. 종말이란 우리 세대가 함께 꾸었던 꿈의 종말이라는 뜻이다. 이제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월드 팝 세대의 종말. 한 가지 춤으로 동네 아이들이 하루 종일 놀았던 시대의 종말. 저 어마어마한 스타가 사는 세상은 어떤 것일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뛰던 그 세대의 종말 말이다. 그 꿈이 모두 허상이었다 해도 스타가 더 이상 신비롭지는 않은 요즘, 스타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었던 우리 세대가 더 행복했을지 모른다. 인스타, 라방, 브이로그 등 온갖 통로로 스타와 팬들이 소통을 하지만 과연 그것이 우리를 그리 충만하게 해 주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더 갈증 나게 하는 것 아닌가 싶다.



6. 미국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


마이클은 흑인이다. 흑인 팝스타이다. 백인을 뛰어넘어버린 흑인, 미국 대중음악에서 백인 우월주의를 종식시켜버린 흑인이다. 아, 종식인지는 모르겠다. 그런 것은 하루아침에 종식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그 뿌리는 살아남아 여기저기에서 야금야금 싹을 내밀어 올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숫자와 통계 차원에서만큼은 차별을 종식시킨 것이 맞다.


미국에서 흑인 아티스트들이 넘어야 할 장벽은 인종차별뿐은 아니었다. 수백 년 간 이어져 온 흑인 문화, 노예로 시작된 아프리칸 아메리칸적 삶의 방식에서 오는 장벽도 있다. 흑인은 가족 중 한 명이 크게 성공하면 온 일가친척을 다 책임지는 문화가 있다. 휘트니 휴스턴은 온 가족을 자신의 회사와 음악 작업에 참여시켰다. 그러다 보니 주먹구구식 서로봐주기식 아마추어 가족 회사가 되어 이후 경제적 몰락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휘트니를 둘러싸고 있었던 형제자매들도 마약은 나눌지언정 휘트니의 음악적 발전을 함께 고민해주지는 못했다. 휘트니는 흑인들로부터 비난과 야유도 많이 받았다. 흑인답지 않은 흑인, 백인에게 최적화된 흑인이라는 이유에서이다.

마이클이 백색증과 사고 등으로 피부 치료와 성형을 거듭하면서 백인과 같은 외모로 변해간 것에 대해서도 언론들은 두 번 고민도 없이 백인 추종자라는 딱지를 붙였다. 사고로 인해 다친 코가 성형 부작용으로 계속 재성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피부는 백색증으로 하얗게 변해가는데, 병적이다 싶을 정도로 하얘지는 피부에 굳이 원래 모양의 코를 만들어 붙일 이유도 없는데 말이다.

마이클은 한국을 좋아했다, 공연은 한 번밖에 못했지만 여러 이유로 한국을 자주 찾았고 한국을 자주 언급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미처 몰랐던 한국이라는 나라의 슬픔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인터뷰가 있다. 마이클은 슬픈 사람 가난한 사람 힘든 사람들을 돌아보는 것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일반인과 분리된 삶을 살 수밖에 없었지만 일반인의 삶을 동경했고, 특히 어린아이들이나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더 눈길을 준 사람이다. 자신이 가진 부를 어떻게든 그들과 나누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이러하기에........ 한국의 이 나이 든 아줌마가 그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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