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나를 만났던 제자들이 얼마나 될까? 교직 생활 27년이니 숫자로 꼽기에 민망할 정도로 많을 것이다. 그 숫자만큼 나는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항상 나 자신이 너무 부족하고 미숙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를 거쳐 간 모든 아이들이 나를 잊어버리고 씩씩하게 자기 잘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그래도 나는 매 순간 진심을 다하긴 했기에, 이제 성인이 된 아이들이 나의 정상을 참작하여 나의 부족함에 대해 널리 양해해 주길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기억에 선명히 남은, 아마도 평생 기억하면서 앞날을 기원해주고 싶은 제자가 몇 명 있다.
먼저, 두 번째 담임에서 만난 아이. 1995년 중1. 우리 반 반장이었다. 여자 반이었고 학급 전체 인원은 50여 명이었다. 키가 크고 숏컷을 하고 목이 길고 얼굴에 주근깨와 약간의 버짐이 있는 아이였다. 솔직하고 적극적이고 의욕이 넘치는 아이였다. 공부도 곧잘 해서 반에서 5등 이내였다. 저력이 있어서 잘 끌어주면 전교권 성적도 나올 아이로 보였다. 무엇보다 글을 잘 썼다. 기교는 없었으나 항상 솔직하고 간결한 글을 쓰는 아이였다. 나는 그때 아이들에게 작문을 자주 시켰는데 그 아이가 써낸 글들이 좋아서 더 빠져들었던 것 같다. 지금 그것들을 남겨놓지 않은 것이 참 후회스럽다.
그리고 그 아이는 춤을 정말 잘 췄다. 당시 히트곡이었던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에 맞춰 춤을 출 때는 룰라의 어떤 멤버보다 더 룰라 같았다. 그 아이가 웃을 때는 내 마음도 환해졌다. 아마 그 당시의 내 표정을 찍은 사진이 있다면 아마도 ‘딸바보’ 아빠의 표정일 것이다. 나는 당시 미혼이었고 여자였지만 내 눈에 그 아이는 마치 내 자식 같았다. 여름 방학 개학 전날에는 그 아이를 비롯하여 학급 아이들을 만날 기대에 심장이 두근두근 뛰며 잠을 설치기도 했다. 처음 교실에 들어가서 아이들을 보면 무슨 말부터 꺼낼지, 아이들은 나를 어떤 표정을 지을지, 그리고 그 아이는 또 얼마나 더 훌쩍 자라 어떤 눈빛으로 나를 바라볼지 등을 상상하면서 자는둥마는둥 했었다. 진정 사랑에 빠졌던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는 부모님, 특히 아버지와 갈등이 있었고 가정 상황이 상당히 어렵고, 아이가 혼자 해결하지 못할 많은 문제들도 있었다. 지금 드는 생각인데, 영양 상태도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제대로 갖춰 먹지 못하고 허기를 꾹 참았을 것을 생각하는 지금, 마음이 너무 아프다. 엄마가 되어 아이를 키워보니 알겠다. 진작 알았다면 치킨이라도 자주 사줬을 텐데 당시 27세 미혼의 나는 그런 것을 다 꿰뚫어 볼 눈을 갖지 못했다. 그리고 선생님한테 차마 털어놓을 수 없었을 심각한 문제들도 있었던 것 같다. 눈에 늘 슬픔이 있었다. 쌍꺼풀이 없는 동그란 눈이었는데 호기심 가득하고 맑았으나 알 수 없는 슬픔이 있는 깊은 눈이었다. 나는 그 눈빛에 또 매료되었던 것 같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서도 밝고 환하게 웃으며 춤을 추는 그 아이가 정말 좋았다. 마치 아이돌 좋아하듯 그 아이를 좋아했다. 1년 내내 그 아이를 제일 좋아했다. 반장이었기에 학급의 다른 아이들도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이 반장을 좋아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분위기이기도 했고, 학급 운영에도 좋아서 아이들에게도 여러모로 편리하기도 했다.
그렇게 행복한 한 해가 흐르고 다음 해인 1996년에 그 아이는 2학년으로 진급했고 나는 다시 2학년 다른 학급의 담임을 맡았다. 새로 만난 아이들에게 집중도 해야 했고 나도 임신을 하는 등 개인적으로 너무 바빠 시간이 휙휙 흘러갔고 다음 해에 졸업을 했다. 그렇게 97년, 98년이 지나고 나는 99년부터 다른 학교로 옮겼다. 99년에 그 아이는 이미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것이었다.
99년 가을 어느 날, 집으로 가다가 주유소에 들렀는데 그 아이가 알바를 하고 있었다. 내 차에 기름을 넣고 있는 아이가 낯이 익어 자세히 보니 바로 그 아이가 아닌가? 나는 너무 반가워서 바로 차에서 내렸다. 이름을 부르고 포옹을 하고 안부를 물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학업을 중단한 상태였다. 원래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에 주유소 제복과 모자를 쓰고 기름을 넣고 있는 아이. 뭔가 복잡한 사연이 있는 듯했으나 자세히 대화할 상황이 아니었다.
나도 집에 두 돌 겨우 지난 아들이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몇 마디 말도 못 나누고 서둘러 집에 왔다. 이제 다시 만났으니 그 주유소에 가면 또 만날 수 있을 것이고 한 번 시간을 내어 밥이라도 먹어야지 하고 생각하며 집으로 왔다. 그곳에서 숙식을 한다고 하니 간식거리라도 사서 조만간 들르리라 생각했다. 그때는 청소년들이 주유소에서 숙식을 하며 알바를 하던 시절이었다.
며칠 후 퇴근길, 귤과 사과, 과자 등을 사서 갔다. 사장님에게 우리 제자 잘 봐달라고 부탁도 하고 동료들에게도 잘 대해달라고 말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주유소에 없었다. 다른 아르바이트생에게 물어보니 그만두었다고 한다. 연락처도 모른다고 한다. 아뿔싸.
그날 이후 그 아이 소식은 듣지 못했다. 그 주유소에도 계속 갔지만 그 아이를 볼 수는 없었다. 어쩌면 나를 피한 것 같기도 했다. 어떤 사정인지는 모르나 피할 만하니까 피했겠지 싶다. 그 아이에게 나는 마음을 다 터놓을 수는 없는 선생님이었나 보다. 하긴 병아리 아기 엄마로 엄벙덤벙 정신없는 나에게 그 아이가 무엇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추측건대 그 아이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주유소에서 숙식 알바를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나에게 들켰다고 생각한 것 같다. 또 그런 상황까지 내몰렸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것 외에 많은 괴로움이 있었을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괴로움일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 나도 이런 짐작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당시 갓 결혼한 젊은 교사, 공부, 입시, 취업, 결혼이라는 통과의례를 다 지난, 그야말로 정도만을 걸어온 나에게 그 아이가 무슨 괴로움을 털어놓을 수 있었을까 싶다.
담임하던 당시 상담했던 때가 생각이 났다. 그때 아이는 인문계를 가고 싶은데 아버지께서 자꾸 실업계를 가라고 한다고, 그래서 아버지를 설득하기가 힘들다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정 설득이 안 된다면 그냥 네가 인문계를 지원해 버리면 안 될까? 네가 그렇게까지 의지를 보이면 아버지도 인정하시지 않을까? 내가 너희 아버지와 통화를 좀 해볼까?”
“글쎄요. 아버지가 말이 잘 통하는 분이 아니에요.”
그때 아이의 눈빛이 지금도 선명히 기억난다. 체념과 포기. 나는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그 눈빛만은 작지만 큰 충격이었다. 뭔가 벽을 치는 듯한 눈빛. 지금 돌이켜보니 이 선생님과는 더 깊은 대화는 힘들다고 판단한 듯하다.
당시 내 좁은 소견으로는, 아버지가 딸의 진로에 대해 그렇게까지 완고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렇게 똑똑하고 의지가 강한 딸인데 나 같으면 무조건 찬성하고 밀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나의 사고방식 자체가 그 아이와의 장벽이었음을 이제는 알겠다. 세상에는 다양한 부모가 있고 그 나름의 이유와 사정이 있는 것이다. 29살 젊디 젊은 나의 순진무구와 단순무식을 그 아이는 본능적으로 느낀 것 같았다.
중2를 마치고 그 아이는 3학년으로 진급하고 나는 다시 중2 담임을 맡았을 때, 그 아이는 다소 서먹하게 나를 대했고 담임도 아니고 학년도 달라진 나에게 찾아오지도 않았다. 나도 임신을 하여 경황이 없기도 했다. 그 아이는 실업계로 진학했다. 그 똑똑한 아이는 결국 아버지의 생각을 따르기로, 자신의 꿈을 접기로 했던 것이다. 그 사이에 집에서 어떤 갈등과 문제가 있었는지 나는 알 길이 없다.
당시 그 아이는 나를 다른 세계 사람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 아니다.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지 모르나 나는 그 아이의 얼굴과 표정과 그 웃음, 그리고 깊고 슬픈 그 눈빛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리고 항상 빈다.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여기까지가 나의 제자1 이야기의 전부이다. 좀 허무하게 느껴질 것이다. 보통 교사들의 제자 이야기에 대해 사람들은 명확한 기승전결을 기대한다. ‘어떤 아이와의 특별한 사건 - 의외의 반전으로 서로 당황 - 그래서 기억나는 아이 - 알고 보니 성공하여 잘 살고 있더라.’라는 반전이 있는 해피엔딩 성공 스토리를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이 제자 이야기는 아무 기승전결도 없고 결말은 더더욱 없다. 아쉽게도 이것이 더 현실이다. 실제 교사와 제자 사이의 이야기에는 기승전결이 없다. 기승전이 있어도 결말이 없는 경우도 많다. 아이들이 아직 삶의 과정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제자들의 소식을 다 듣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제자를 내가 가장 먼저 꼽는 것은, 이 아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든, 아이가 기억하든 못하든, 지금 너를 기억하는 선생님이 하나는 있다는 것, 그리고 성장기 그 아름다운 시기에 너를 정말 좋아하고 아낀 한 어른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사랑을 잠시라도 받은 사람은 어디에서건 자기 자존감을 지키며 살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지금 당신도, 당신의 자녀도 어느 해 어느 교사에게는 존재 자체로 아주 특별한 어떤 아이였을 수 있고, 앞으로 그리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