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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백일장

3. 아들의 중국 냉면

- 새로운 남자들이 자라고 있다.

by 연잎

아침에 일어나 감자국과 밥을 했다.

그러나 두 아들 모두 먹지 않았다.

큰아들은 일어나기 바쁘게 뛰어 나갔고 들째는 자신이 정해놓은 식사를 했다. 닭가슴살과 샐러드.

나는 내가 만든 감자계란국을 나 혼자 아구아구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마친 둘째는 물에 간장과 설탕 등을 타고 또 타면서 갈색 빛깔 국물을 만들어 냉장고에 넣었다. 중국냉면을 만들겠다고. 그러고는 식재료 살 것이 더 있다고 아미트에 장을 보러 가자고 한다. 나도 양파, 대파 등 미리 살 것이 있어서 같이 다녀왔다.


아들이 산 것은 에그 파스타면, 땅콩버터, 닭가슴살, 당근, 청경채, 중국 간장, 청주, 생강.

내가 산 것은 우유, 양파, 대파, 대패삼겹, 이베리코 돼지고기, 막걸리 등


집에 오자마자 아들은 중국 냉면 만들기에 착수했다.

닭가슴살을 삶고 야채들을 데치고 에그파스타면을 삶고 당콩 버터를 미온수에 겨자와 함께 녹이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는 계란 지단을 부치고 닭가슴살 찢기도 하며 도왔다.


완성된 냉면은 충분히 먹음직스러웠고 맛도 담백했다. 정말 깔끔한 맛이었다.

간장과 설탕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것 같아서 최대한 절제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약간은 싱거웠다.

아들이 하는 말, "냉면은 자주 사먹지 마세요. 간이 진짜 쎄니까. 찬 음식 간은 더 쎄요."

본인이 직접 만들어보니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들은 요리에 관심이 많다. 올해 20세. 대학 1학년이다. 일명 코로나 학번.

대학에 붙었으나 대학생다운 생활을 거의 못하고 삼시세끼를 집에서 해결하고 있다.

배달음식을 종류별로 다 시켜먹고 본인이 해먹기도 하고 엄마가 해놓은 음식들을 찾아 먹기도 한다. 적어도 올해 들어서는 나보다 아들이 자기 끼니 준비를 더 하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상상한다. 이런 아들이 꾸리는 가정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 아들은 음식과 부엌의 주인이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중 1 때 고추장을 담궜던 아이, 중3 때 식빵과 과자를 구워던 아이, 고등학교 시절 주말마다 파스타와 리조또 등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은 인터넷 레서피 따라 다 해먹었던 아이, 조리에 필요한 도구들을 달라고 조목조목 요구했던 아이다.

내 의지로는 절대 사지 않은 감자 으깨는 스텐 망치(?)를 눈물을 머금고 거금 5만원을 주고 사기도 했다. 그것으로 으깨야 감자 수프가 곱게 만들어진다는 아들의 한 마디 말에 그냥 사줬다.


궁금하다. 울 아들이 결혼을 하면 어떤 모습의 가정을 꾸릴지.

아내가 자기만큼 음식과 식재료에 대해 모를 경우 이상한 맛과 이상한 조합의 음식을 참아낼지, 주방에서 썩어나가고 맛이 이상해지는 식재료들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아니면 직장을 다니고 일이 바쁘니 집안일과 주방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질지.


요즘 티비엔 온통 음식과 먹방이다. 우리 아들 뿐 아니라 동 세대 아이들은 다 음식에 대해 울 아들 정도의 관심과 경험을 갖추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들이 자기랑 비슷한 여자와 결혼할 수도 있겠다. 만약 그렇디면 참 아름다운 모습이 상상된다. 주중엔 각자 자기 일에 바빠 대충 먹고 지내다가 주말이 되면 각자 먹고 싶은 요리를 한 접시씩 같이 만들어 나워먹는 모습.

최소한 주부 혼자 장보고 혼자 요리하고, 잘 얻어먹은 남편은 눈치 보다 마지못해 설겆이하는 정도의 장면을 연출하지는 않을 것 같다.


새로운 세대, 새로운 인간의 출연을 나는 집에서 느낀다.

딸을 키워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으나 울 아들을 보면, 남자들은 달라졌다.

이전의 틀과 이전의 성관념으로 설명되지 않을 새로운 남자가 나타난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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